[‘3共통치일지’로 본 5·16](1)5·16이후 한달

[‘3共통치일지’로 본 5·16](1)5·16이후 한달

황성기 기자 기자
입력 2000-05-16 00:00
수정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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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은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지 39년이 되는 날이다.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치하의 18년은 아직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되고 있다.그러나 최근 발견된 ‘國家再建最高會議(국가재건최고회의) 議長室(의장실)’의 ‘日誌(일지)’는 당시 시대상황을 쿠데타 세력의 시각에서생생하게 기록한 데다 종래의 다른 자료와는 달리 윤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최초로 공개된 쿠데타 세력의 공식일지를 통해 쿠데타 직후부터 1968년까지의 상황을 4회에 걸쳐 정리한다.

‘未明(미명) 軍部(군부)에서 無血革命(무혈혁명).軍事革命(군사혁명)委員會(위원회) 設置(설치).政權引受(정권인수)를 宣言(선언).全國(전국)에 非常戒嚴令(비상계엄령)’-60년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은 한줄의 검은색 펜글씨로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61년 5·16쿠데타 당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이 작성한 ‘日誌(일지)’ 첫페이지 첫째줄이다.오른쪽 상단에는 ‘4294.5.16.火’라고 적혀 있다.‘4294’는 단기로 1961년을 뜻한다.A3용지를 가로로 뉘어 한줄씩 국한(國漢)혼용으로 기록한 일지는 ‘혁명’‘중요업무’‘국내외뉴스’ 등의 항목별로 분류돼 있다.

특히 5·16 이후 한달 남짓 기간에는 입법·행정·사법 등 주요부문의 장악상황,정치·경제·사회 등에 걸친 사후조치,쿠데타를 긍정 평가한 국내외 언론의 기사제목 등을 주로 기록했다.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쿠데타 세력의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

16일치 일지는 ‘未明…非常戒嚴令’에 이어 ‘혁명위,각급 의회 해산.전국무위원 체포 명령’‘혁명군 전국 중요도시 장악.전기능 일시 완전 정지’‘UN군 사령관,질서회복과 휘하 장병 금족령(禁足令)’‘그린 대리대사 윤대통령과 회담’ 등으로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요약했다.

‘각급교 임시휴교 상태,관청 집무정지,시가 평온,상가 한산,전방 이상없음’이라는 대목에서는 당시 쿠데타 세력의 상황 판단을 읽을 수 있다.이들의자체 평가는 다음날 일지에 ‘군부무혈 쿠데타 완전 성공,혁명위 3권 완전장악’이라는 문구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최고회의는 쿠데타 정권의 권위를 세우고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해용공혐의자,반혁명세력,부정축재자,폭력배 등을 집중 단속한다.공직자 가운데 병역미필자,축첩자,무단 결근자 등도 철퇴를 맞았다.

17일에는 ‘용공분자 단속을 지시’했고,18일에는 ‘폭력배 1,500명을 검거’했다.‘용공분자 2,000여명을 검거’(22일)했고 ‘깡패를 탄광으로 보내근로정신을 체득토록 지시’(23일)했다.‘일간신문 76건,일간통신 305건,주간신문 453건의 등록을 취소’(27일)하고 ‘국민학교 과외수업을 엄금토록지시’(29일)한 점도 눈에 띈다.

또 일지에 적힌 국내외 동향은 대부분 친(親)쿠데타 성향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통치일지가 정사(正史)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감안하면,쿠데타 세력이 역사적·국제적 정통성 확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18일 육사생에 이어 19일에는 공사생이 ‘혁명대열에 하늘과 땅에서 입체적 시위’를 벌였다고 적었다.

때로는 남북 대치 상황이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 확보 논리로 동원됐다.‘공산세력 지구 남반부로 침투,미국 케네디 대통령 연설’(6월2일),‘재일동포에 반공이념 재교육 의결’(8일),‘국방장관 임전태세 완비 천명’(9일),‘월남 공산반도 100여명 사살’(11일),‘한국 군사혁명정권은 방공 강화,맥나마라 국방장관 상원 외교위서 증언’(15일) 등을 부각시킨 점이 이를 방증한다.

기동취재소팀.

*JP와 5·16.

4·13 총선 이후 신중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5·16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 측근은 JP가 16일 오전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리는 5·16 민족상 시상식에참석한 뒤 국립묘지에 들러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내외 묘소를 참배한다고 밝혔다.18일에는 재단법인 ‘5·16 민족상’ 임원과 오찬도 함께한다.

5·16 39주년을 맞은 JP의 심정은 대단히 착잡한 듯하다.총선 참패로 정치적 입지가 위축된 데다 ‘보수본류’의 법통을 잇는다고 자처한 자민련도 창당 이래 최대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15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자민련 낙선자 권역별 간담회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했다.측근은 “날마다참석하기 어려워아예 처음부터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이런 와중에 지난해 결별했던 한국신당 김용환(金龍煥)의장의 갑작스런 방문은 그에게 다소 힘이 된 것처럼 보인다.JP는 지난 13일 밤 청구동 자택을 찾은 김의장을 반갑게 맞아들이며 “선거때 고생이 많았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5·16때마다 ‘내각제’를 비롯한 정치적 화두를 던져온 JP가 과연 올해에는 어떤 속내를 비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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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기자 marry01@
2000-05-1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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