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납·월북문제 새롭게 조명할 때 됐다

[기고] 납·월북문제 새롭게 조명할 때 됐다

서중석 기자 기자
입력 2000-04-24 00:00
수정 2000-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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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자 대한매일에 실린,중경임시정부 외교부장이자 삼균주의 이론가로 유명한 조소앙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현재 북에서 평화통일촉진협의회 고문으로 있는 김흥곤씨의 인터뷰기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김씨는 1948년 남북협상,1950년 한국전쟁과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북행 등에 대하여 쟁점이될 수 있는 증언을 해주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좌우가 싸움만 벌이면 분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고의 이념을 민족통일국가 건설에 두고 좌우합작·남북협상운동을 전개하였다.극우와 극좌는 ‘북벌’과 ‘남정(南征)’을 주장하면서 전쟁에 의해민족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1948년 분단을 코앞에 두고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그것의 일환으로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뒤 전쟁의 참화에 휩쓸렸고,만고풍상을 겪으며 평생을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비극을 온몸에 안은 채 ‘납북’되고 말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 등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미처피신하지 못한 것은 이승만정부가 승리하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자기들만도피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6월27일 새벽 2,3시경 이승만은 국회에도 국무회의에도 알리지 않고 특별열차에 몸을 실었다.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반경에 한강교가 폭파되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나라 걱정,민족 걱정이 앞섰기 때문에도 재빠르게 피신을 하지 못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 전부가 납북이었느냐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그러나 주요 지도자들은 강제로 끌려갔음에 틀림없다.안재홍은 피신해 있다가 끌려나왔다.김규식의 경우 피신 직전에 북의 요원들이 찾아왔다.김규식이 자진 북행하려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부인 김순애 여사와 생이별을 했을 리가 만무다.이들은 압록강변에 있는 만포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고 북행을 거부했다는 증언도 있다.‘월북’중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국회프락치사건으로 재판받은 제헌국회의원들은 전쟁이 났을 때 서대문감옥소 등이 저절로 열려 걸어나왔다.그러나 이들은 이승만정부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또 인민군 점령지역에 생겨난 여러좌익단체에 소극적으로 가담하였거나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사람들도 ‘살기위해’ 산에 들어가거나 북행을 하였다.

‘남북협상’에 대해서도 곡해가 많다.극우반공세력은 김구·김규식 등의남북협상이 북에 이용만 당하였다고 주장하였고,북에서는 정통성과 결부시켜남북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를 유난히 강조하였다.1948년 4월 북에서는크게 성격을 달리하는 두 종류의 회의가 열렸다.하나는 연석회의이고 다른하나는 요인회담으로,세칭 남북협상은 주로 후자를 가리킨다.연석회의는 대규모 회의였지만,김일성 박헌영의 ‘미제국주의’와 단선·단정반대 주장에찬성일색의 발언만 하였다.그러나 김규식은 이 연석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김구도 단 하루 잠깐 나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김규식과 김구의 강력한 요구로 열린 요인회담에서는 단선·단정반대도 있었지만,북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하여신헌법을 제정,통일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결의하였다.북으로서는 지킬 수없는 것이어서 회피하려고 하였지만,김구·김규식 등을 빈손으로 가게 할 수도 없었다.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결코 이용당한 것이 아니었고,민족의 대의를 세우는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남북협상’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그와 함께 월남한 사람,월북 또는 납북된 사람들의 문제가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다루어지기를 바란다.


오현주 서울시의원 “특사경 KICS 의무화… 이행 대책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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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중 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2000-04-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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