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인도와 자연

[대한시론] 인도와 자연

강태희 기자 기자
입력 2000-03-02 00:00
수정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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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인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그곳으로 여행하는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서양 사람들이 동양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나라로 흔히 인도와 일본을 꼽는데 우리는 같은 동양권에 속하면서도인도에 대해 늦게 눈을 뜬 셈이다.이곳을 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랫동안꿈꾸고 계획한 끝에 마침내 떠나게 마련인데 그만큼 인도 여행은 쉽지 않은것으로 정평이 나있다.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몇년을 벼른 끝에 최근 그곳에 다녀왔다.

한 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또한 제한된 시간과 조건아래서 그를 접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는 일은 완전히 무지한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더구나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담으로 신비화된 인도는 더욱그러하다.그러나 인도만큼 충격적인 여행지는 드물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또 그에 자족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도는 또한 여행자로 하여금 기행문을 쓰게 만드는 나라이다.그만큼 볼 것도 느낄 것도 많다.불편한 교통과 미비한 숙박시설,그리고 맞지 않는 음식등 상당한 장애요인을 가지고서도 인도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매력은 여러 가지이다.그리고 사람들은 여행을 거치면서 불편은 잊고 보다큰 것을 보는 깨달음을 얻는다.그것은 인도인들이 자연의 품에서 그와 친화한 채 불편과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주는 교훈 때문이리라.

중부 뭄바이(옛 봄베이)에서 갠지스강의 화장터로 유명한 북동부의 바라나시로 북상하는 여정으로 2주 정도 머물면서 본 인도는 내게 크고 깊은 문화와 정신을 간직한 나라로 언젠가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이 여행의 성과는 우선 인간의 여러 삶의 모습에 대한 개안의 경험이며,더 나아가이 나라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씻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맨 처음으로 만난 충격적인 인도의 모습은 ‘도비 가트’라고 불리는대형 빨래터였다.이곳에서는 세탁기보다 손빨래가 더 싸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관작업으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끝이 보이지 않는거대한 빨래터에서 사람들이 일렬로 촘촘히 늘어서 돌 위에 빨래를 내려치는 모습은 한편 놀랍고 또 한편 애처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그것은 이시대에 어떤 사이버 스페이스보다 더‘초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빨래터의 엄청난 규모보다 잿물처럼 혼탁한 물의 빛깔이었다자세히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깨끗한 헹굼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그러나 수많은 빨래줄과 지붕 위에 빽빽하게 널린 빨래들은 맑은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그래서 좀 덜 헹구어도 별 탈은 없는 것이겠거니.

또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화장실 문제는 두고 두고 나를 괴롭혔다.고급 호텔에는 물론 깨끗한 욕실과 변기가 있지만 일단 길을 나서면 변변한 화장실은포기해야 한다.타지마할과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에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화장실문화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이다.차라리 가장 청결하고 속편한 방법은 그들처럼 도로변의 자연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나는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불결함에 적응하고 또 야외 화장실에자연스럽게 동화하는지를 체험했다.하루 이틀만 지나면 모든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인간의 타고난 적응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은 우리가 겨우 얼마 전에 떠나온 곳이기에 더욱 그랬으리라고 판단된다.

인도에서 그러나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찬란하고 거대한 문화유산들이었다.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에 속한다.어쨌든 인도는 과거와 현재,자연과 문화,소유와 무소유의 양극들이 혼재하는 곳이고 그바탕에서 변화와 불변의 시스템이 교차하는 나라였다.그리고 거리에 넘치는걸인과 부랑자들의 존재가 외지인의 반감이나 비판을 초월하는 바로 그 지점이 어쩌면 거대 인도의 저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교수
2000-03-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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