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농구 최장수 단장이 코트를 떠났다.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2일최상철단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현대산업개발 홍보이사를 지낸 김익현상무를 임명했다.최단장은 RV판촉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단장은 ‘해가 지지 않는 왕국’으로 불린 기아의 산 증인.창단 이듬해인 87년 2월 사실상의 단장인 농구단 부장을 맡은데 이어 90년 단장으로 승격돼 12년10개월여 동안 기아농구단의 영광과 좌절을 지켜 보았다.그동안 농구대잔치에서 7차례나 정상을 밟았고 프로농구 원년리그에서도 챔피언의 영광을 누렸다.이후 두 시즌에서도 모기업의 부도로 구단의 운명을 점칠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뚫고 거푸 준우승을 차지하는 뚝심을 보였다.
최단장은 신생팀 기아를 최강에 올려 놓는 과정에서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과 ‘육박전’까지 치러낸 덕에 웬만한 감독보다 해박한 농구지식과감각을 자랑한다.이 때문에 코칭 스태프조차 그의 패인 분석에 좀처럼 이의를 달지 못한다.하지만 그는 늘 ‘시어머니’역 보다는 선수들을 어루만지고 자신감을 북돋우는 ‘맏형’역을 자임했다.언론과 농구인들을 상대하면서도 늘 소탈하고 담백한 자세를 잃지 않은 덕분에 말 많은 농구계에서도 “가장괜찮은 단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퇴진을 예감이라도 한 듯 “팀이 최강의 면모를 되찾는것을 보고 떠나고 싶다”며 전국의 경기장을 누비는 열정을 보였던 그는 팀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임무를 마감했다.이 때문에 농구계에서는 “기아는 물론 농구계로서도 큰 손실”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선수들과의 마지막 오찬에서도 “농구왕국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당부를잊지 않은 그의 마음은 아직도 코트에 있는 것 같다.
오병남기자
최단장은 ‘해가 지지 않는 왕국’으로 불린 기아의 산 증인.창단 이듬해인 87년 2월 사실상의 단장인 농구단 부장을 맡은데 이어 90년 단장으로 승격돼 12년10개월여 동안 기아농구단의 영광과 좌절을 지켜 보았다.그동안 농구대잔치에서 7차례나 정상을 밟았고 프로농구 원년리그에서도 챔피언의 영광을 누렸다.이후 두 시즌에서도 모기업의 부도로 구단의 운명을 점칠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뚫고 거푸 준우승을 차지하는 뚝심을 보였다.
최단장은 신생팀 기아를 최강에 올려 놓는 과정에서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과 ‘육박전’까지 치러낸 덕에 웬만한 감독보다 해박한 농구지식과감각을 자랑한다.이 때문에 코칭 스태프조차 그의 패인 분석에 좀처럼 이의를 달지 못한다.하지만 그는 늘 ‘시어머니’역 보다는 선수들을 어루만지고 자신감을 북돋우는 ‘맏형’역을 자임했다.언론과 농구인들을 상대하면서도 늘 소탈하고 담백한 자세를 잃지 않은 덕분에 말 많은 농구계에서도 “가장괜찮은 단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퇴진을 예감이라도 한 듯 “팀이 최강의 면모를 되찾는것을 보고 떠나고 싶다”며 전국의 경기장을 누비는 열정을 보였던 그는 팀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임무를 마감했다.이 때문에 농구계에서는 “기아는 물론 농구계로서도 큰 손실”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선수들과의 마지막 오찬에서도 “농구왕국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당부를잊지 않은 그의 마음은 아직도 코트에 있는 것 같다.
오병남기자
2000-01-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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