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노인 돌보는 척추장애 소녀의 ‘구슬땀’

중증 장애노인 돌보는 척추장애 소녀의 ‘구슬땀’

김경운 기자 기자
입력 1999-12-20 00:00
수정 1999-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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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1리에 있는 장애복지시설 ‘나눔의집’.개천가에 자리잡은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중증 장애 노인들이 모여 있는 방안에는 온기가 느껴졌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구리여고 2학년 허윤영(許允寧·17)양의 밝은 목소리가 눈을 감고 누워있던 윤모옹(76)을 깨웠다.허양은 뇌경색증을 앓고 있는 윤옹의 머리를 감기고얼굴을 씻겼다.조제약을 섞은 미음도 먹였다.

중증 장애인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허양은 척추 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허양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틈틈이 나눔의 집을 찾는다.어머니한규희(韓奎熙·42·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씨도 가끔 딸과 함께 봉사활동을한다.

허양은 어머니와 세무사인 아버지와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아 왔다.하지만2년 전 척추가 심하게 휘는 ‘척추측만증’에 걸려 대수술을 받은 뒤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됐다.

허양은 척추에 철심을 박아 지금도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못한다.그녀가 봉사활동에 눈을 돌린 데는 어머니 한씨의 배려가 컸다.

한씨는 딸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에 대해 허양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허양은 결국 ‘나보다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착하게 살자’고 결심하고 장애인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허양은 수술 직후인 97년 8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불편한 몸에도 버스로 통근하며 하루 1∼2시간씩 봉사활동을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수발한 지 1시간쯤 지나면 허양의 얼굴은 울상이되곤 한다.척추가 당겨서 그럴 때도 있지만,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더욱 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양은 “할아버지가 불쌍해요.어떻게 해야 할아버지의 병이 나을 수 있을까요”라며 울먹인다.

어머니 한씨는 “윤영이가 수술 뒤 병상에서 불편한 자세로 누워 통증을 잊으려고 애써 책을 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을 보살필 때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한씨는 “다른 학부모들도 방학 때 자녀를 마음놓고 보낼 곳이 없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따뜻한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경운기자 kk
1999-12-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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