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민주 기지론

[대한광장] 민주 기지론

방선주 기자 기자
입력 1999-09-13 00:00
수정 1999-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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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기지론(民主基地論)’이라는 것은 원래 북한에서 전개된 이론으로 북한이 통일을 위한 ‘민주주의 근거지’로서 우선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1946년 봄­여름 사이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그때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이제는 남쪽에서 이 개념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아닌가 한다.

북쪽에서는 소군정의 지도하에 토지개혁을 하고 친일파들을 내몰고 이기분자(異己分子)들을 숙청하고 ‘인민정권’을 창출하여 통일에 대비한 ‘민주기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현 시점에서의 남쪽에서는 우선 산적한 문제가운데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신원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민주기지’로서의 선행조건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부러웠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들 사이에 상호 증오감이 적다는 점이었다.국민 사이에 서로 증오감이 적으면 적을수록,억울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나라는 강국이다.가난한 나라가 원자탄을 가지는 것보다도 월등히 효과적이다.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범주는 상당히 넓지만 그중에서도 6·25 이전에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제주도의 4·3사태가 그렇고 문경 석봉리의 한 마을 학살사건이 그렇다.대만에서는 1947년의 2·28사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의 처참했던 문화대혁명 뒤처리에 있어서도 대국답게 보상할 것은 보상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하였는가?지금에야 해결책을 모색중에 있는 느낌이 있다.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근자에 있어 문화방송의 4·3사건 특집들이 진지한 노력이라 생각된다.물론,필자는 ‘억울하게 된 원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소련과 그 주위라고 지목한다.북한에서의 소련군정은 알다시피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되는 세력은 인정하지 않고 당초부터 남한 미군정의 교란을 적극적으로 획책했었다.이것은 ‘쉬티코프 비망록’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하여,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 다시 꺼내는 것도 쑥스럽지만 남쪽에서는 사회상의 여러 기존 모순에,북쪽에서의 공세적 교란공작,미 당국의 ‘계산’과 ‘실책’ 등으로 혼란이 가중하여 갔다고 보여진다.의젓한 시골 선비가 좌경운동에 몰두하게도 되고 대지주의 자제가 월북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월남자,우익 민족주의자와 남쪽 기득권층(친일 부역자집단을 포함하여)으로서는 남한내에서조차 몰리면 갈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붙잡혀 필사 반격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에는 이로,피에는 피로’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얼마전 ‘대한매일’에 실린 ‘문경사건’을 생각해 보자.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은 평화스러운 산간벽지의 마을일 뿐이다.두 개의 상반되는 외세의 분단 점령이 없었던들 여태껏 평화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대는 북쪽에서 지리산쪽으로 게릴라가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했다.1949년 가을의 북쪽 신문을 보면 경북 산간지대에서는 피아의 교전뿐만아니라 생포한 경관들을 처단했다는 보도 등을 볼 수 있다.동료들이 생포당한 후 처형되는 것을 보고 발작적인 분노가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이러한 환경하에서 문경경찰서에서도 우호적이라고 분류된 석달마을 남녀노소가 전멸적 학살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6·25축소판의 비극을 6·25 이전의남한 사회에서 본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어른이 됐으니 나이에 걸맞게 서슴없이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을 하여야 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서의 역량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필자는 지난 8월 27일 새벽 일찍 떠나 800㎞를 주파하여 어느 시골에다녀왔다.1950년도 4월 빨치산과 좌익군인을 처형하는 천연색 동영상물(動映像物)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이다.당연하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너무도 슬픈 광경이었다.

통일,통일,부르기 전에 우선 주위부터 다지자.슬기로운 국민화합운동은 바로 통일의 첩경인 것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1999-09-1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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