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삼베치마와 밍크 코트

[특별기고] 삼베치마와 밍크 코트

박종순 기자 기자
입력 1999-06-07 00:00
수정 1999-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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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기록에 의하면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에덴동산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자신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아담과 이브를 위해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다는 것이 옷에 관한 최초의 기사이다.그러니까 옷이란 우리네처럼 사치품도 아니었고 자기과시의 도구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짚신,나막신,고무신 시대를 거쳐 최신 유행과 멋을 자랑하는 구두의 패션시대에 이르는 기간이 기껏 20년 미만인 것처럼 의상의 발달사 역시 그렇게 긴기간이 아니다. 광목이나 삼베로 만든 치마 저고리 한 벌 입고 아들딸 사남매를 키우는가하면 작업복과 외출복으로 겸용했던 어머니들 세대가 아직도살아 숨쉬고 있다.

의상업의 발달을 터부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그러나 그것이 도를지나쳐 사치와 허영 조장의 촉매구실을 한다면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있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고 있을 때 패션과 유행의 도시로 알려진 파리에 며칠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중심가를 걷다가 유명상표를내건 의상점 곁을 지나게 되었다.진열장에 진열된 옷가지에 매달린 가격표를들여다보며 “저 옷들은 누가 제일 많이 사느냐”고 물었더니 여행업에 종사하는 그 친구는“누구겠나.한국사람들이 주된 고객이라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그런데 그 옷이 바다건너 수입품목에 오르면 값은 날개를 달고 뛰어오른다니 가히 그 값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정장에 넥타이를 메고 집을 나설 때마다 일찍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생각이 떠오르곤 한다.무명바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논과 밭으로 나가시던아버님,그리고 때묻은 치마폭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시고 코를 훔쳐 주시던어머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동백기름을 바른 머리에 비녀를 꽂고 고무신이 제일이라며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가죽신발을 거부하시던 어머님,내가 지금 걸치고 신고 다니는 꼴을 비교하면 송구하기 짝이 없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을 가꾸고 다듬는 것은 죄될 것이 없다.그러나‘나도 8천만원만 있으면 황신혜,김희선이 될수 있다’는 발상이나 미의 접근법은 장승에 분칠하기나 마찬가지다.우리는흔히 개성미라는 말을 쓰곤 한다.그러나 미를 조형하고 상품화하는 시대라면 개성미는 찾기 어렵다.

어떤 젊은이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아가씨와 교제 끝에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다.그리고 2년 뒤 딸을 낳았다.남편의 바람은 엄마를 닮은 예쁜 딸이 태어나는 것이었다.그러나 태어난 딸은 엄마를 닮지도,예쁘지도 않았다.

남편은 누구의 딸이냐,누구를 닮았느냐,어떻게 이런 딸이 태어날 수 있느냐는 의심이 일기 시작했고 다툼이 시작됐다.그리고 그 사건은 얼마후 엄마가100% 뜯어 고친 조형미인이었다는 사실로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누가 이 이야기를 꾸며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문제는 우리 시대가 조형미에 길들여지고 성과 미의 상품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필요 이상의 짙은 화장이나 몸치장,그리고 사치와 허영심리는 일종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견해이다.

의식주 문제는 그 사람이나 그 가정의 생활정도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가난한 노동자가 값비싼 수입의상이나 호랑이무늬 털코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그러나 가진 것이 있고 누릴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사치와 허영의 극을 치닫는다면 그것은 반사회적인 처신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기를 위해 음식을 먹는다.그러나 축척된 칼로리는 자기만을 위해쓰여지는 것이 아니다.사회공익과 발전을 위해 쓰여질 때 의미도,가치도 있는 것이다.사람은 자기를 위해 옷을 입는다.그러나 옷이란 입는 자와 보는자의 공감대 속에서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다시 말하면,그 사람들이 옷입고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보는 것이 올바른 복식문화라는 얘기인 것이다.

할리우드의 크리스마스는 눈도 추위도 없다.그러나 가끔 유명하다는 여우들이 밍크 코트를 걸치고 공식모임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그것은 입기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부(富)의 과시 때문이다.그때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솔직하게 말하면 수천만원짜리 밍크 코트를 걸친 사모님들보다삼베치마 입고 사시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휠씬 자랑스럽다.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1999-06-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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