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새 천년읽기] 타임 캡슐과 埋香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 타임 캡슐과 埋香

이어령 기자 기자
입력 1999-05-28 00:00
수정 1999-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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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다.변해야만이 세계화 지구화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으며 나라의 운명도 여기에 좌우된다.본지가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문명비평가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李御寧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어령의 새천년읽기’를 연재하는 것도 이같은 여망을 담아내기 위해서다.이교수의 에세이는 미래를 향해 깊이와 재미를 함께하는 연재가 될 것이다.

타임 캡슐을 묻는다.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도 땅을 파고 타임 캡슐을 묻자고들 한다.타임 캡슐은 이제 새 천년 맞이 행사의 감초가 되어 버렸다.하지만 천년전의 우리 조상들처럼 후세를 위해 향목(香木)을 묻고 매향비(埋香碑)를 세우자는 사람은 드물다.대체 타임캡슐은 무엇이며매향비는 또 무엇인가.바로 이것이 어쩌면 새 천년의 의미를 탐색하는 우리의 중요한 화두가 될는지 모른다.

타임 캡슐을 맨 처음 땅에 묻은 것은 미국이었다.1939년 뉴욕 박람회 때 웨스팅하우스사는 어뢰모양으로 디자인된 길이 7.5피트 직경 8인치 가량의 캡슐 하나를 땅속에 묻었다. 그 안에는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칫솔 카멜담배 인형과 같은 35종의 일용품,음악,예술을 비롯한 2만3천 페이지 분의 문화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필름이 들어 있었다.그리고 그 한구석에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에게 천년이란 상징적 의미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먼 미래의 시간이다.하지만 미국인들이 생각해 낸 타임 캡술은 천년이 아니라 5000년 뒤에 개봉하여 실제로 사용 가능하도록 설계된 문화용품이며 그 기록이었던 것이다.타임 캡슐을 묻은지하실은 내열성 유리인 파이렉스로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불활성 질소를 채워 내용물들이 변질되지 않도록 과학적 처리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임캡슐을 묻은 사실이나 그 자리를 후세사람이 알아 낼 수 있도록 ‘타임 캡슐에 관한 기록'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세계 곳곳의 도서관과박물관에 뿌리기도 했다.

그들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타임 캡슐을 땅에 묻었는가.대체 그들이생각한 5천년 뒤의 세계는어떤 것이었는가.뜻밖에도 그 해답은 우리를 매우 당혹하게 하는 것이다.타임 캡슐의 착상은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H.G웰즈의 미래소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류의 문명이 언젠가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전제 밑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 박람회의 과학 감독이었던 제럴드 웬즈는 “5천년 뒤 지구 문명이 붕괴된다 할지라도 텍스트로서의 캡슐에 의해 그것을 새롭게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실제로 그 타임 캡슐 안에는 미개인과 다름없는 시람들을 위해서 각종 도구나 기계를 만드는 자세한 설명서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폼페이의 유적에서 보듯이 아무리 화려했던 문명이라 할지라도 5천년이라는 긴 세월은 그것을 흔적 없는 폐허로 만든다.위대한 이집트도 로마제국도 모두 그렇게 사라졌다.전쟁이든 지진이든 화산폭발이나 혹은 화성인의 침입이든 위대한 아메리칸 드림과 문명 역시 언젠가는 그 앞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가위눌린 악몽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한 파편을 땅속에 묻어두려 한 것이 바로 그 웨스팅하우스의 타임 캡슐이라 할 수있다.

‘20세기를 만든 일용품'의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적고 있다.“세계가 붕괴하더라도 타임 캡슐을 꺼내기만 하면 인간의 문명 문화는 언제든 부활될 수가있을 것이다.그 문명 문화는 미국 것이 되고 미국의 문명 문화는 세계를 뒤덮게 될 것이다.즉 타임캡슐은 미국 문명 문화의 유전자로서 땅속에 묻혀진것이다.” 5천년 뒤의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땅에 묻은 타임 캡슐이 고작 오늘의 물질 문명,더 좁게는 미국 문화와 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한 패권 경쟁의한 산물이었다면 요즘 아이들의 말대로 얼마나 ‘썰렁한' 이야기인가.그리고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새 천년맞이를 준비하고 있는 유럽 여러나라의 행사내용이 60년 전 뉴욕 세계 박람회 때의 타임 캡슐의 발상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면 인류의 미래는 얼마나 어둡고 쓸쓸할 것인가.단지 ‘화성인 내습'이라는 가상 현실이 핵이나 환경호르몬과 같은 지구 붕괴의 이야기로 각색되고 그폭이 넓어졌을 뿐 여전히 서구 근대 문명이인류의 유일 절대의 보편적 문명이라는 신앙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쿨 브리태니카 (멋진 영국) 미국의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미래”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중국”-지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레니엄 축제들의 구호를 보면 모두가 자신들의 문화 문명의 자랑스러운 DNA를 시간과 함께 냉동시켜 캡슐속에 밀폐하고 봉인을 찍어두는 타임캡슐의 경쟁을 방불케 한다.

이른바 월드 시스템이 된 오늘의 서구 근대의 백인 문명이 천년을 단위로인류의 문명을 생각할 때 과연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 하는 물음보다는 오늘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구 근대문명을 어떻게 천년 뒤까지 유지 지속시켜가는가 하는 것이 지금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밀레니엄 축제요 그 준비라고 할 것이다.

참으로 인류가 천년 5천년의 앞날을 생각하며 묻어야 할 것은 오늘의 서구문명을 역사의 종결로 생각하는 프란시스 후쿠야마같은 타임 캡슐의 욕망이다.

인류의 멸망과 지구의 붕괴를 가져올지 모를 서구 근대문명의 물질적 기능적 속세주의적 욕망일 것이다.더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아메리칸 드림으로 요약되는 오늘 날의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산업주의적 기계관들을 땅에 묻고새 천년을 위한 문화문명의 창조를 향한 비전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냉전상황이 끝나고 세계시장이 이루어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세계화라는 유행어가 2000년을 맞이하여 뉴 밀레니엄이라는 말로 바뀌어가고있는 것은 세계화 자체의 반성이며 글로벌리즘의 한 손 원리로만 가지고는결코 인류의 앞날은 없다는 새로운 의식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글로벌리즘이 지구의 국경을 없애가는 공간의 확충이라고 한다면 밀레니어미즘은 그것과는 대응되는 시간축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2000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세계화라는 공간 의식속에 천년화라는 새로운 시간의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국경을 뛰어 넘는 시간 죽이기의 세계화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단절시키고 민족문화의 DNA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 번영과 그 문명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래의 희망이라는 IT(정보기술)에 뒤지면 우리는세계화에서 고립된다고말한다.경제든 정치든 모든 것이 세계와 링크(연결)되어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상황에서 우리는 절대로 고립해서는 안된다.그러나 개방의 논리속에서 민족의 시간축인 전통과 역사가 두절되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근대화를 100년동안 해서 서구화한 터키가 지금 어떠한가.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하여 근대화대열의 모범국이 되었던 일본이 지금 새천년을 맞이하는 문턱에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94년만 해도 국가 경쟁지수가 3위이던일본이 13위로 급락하는 의미는 무엇인가.그것은 세계화의 개방을 게을리한것만큼 천년화라는 시간의 단절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한국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 어메리칸 드림이었다면 그것에 맞먹는 코리언 드림은 무엇인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천년전 한국인의 꿈은 땅속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埋香儀式)으로 상징된다.고통과 가난속에서 천년 전 고려인들이 꿈꿔온 것은 천년 만년뒤 보살이 미래불로 성불하여 인류를구제하고모두가 행복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미륵신앙이었다.불교라는 종교 의식이라기보다 민중들의 생활속에서 우러나온 토착신앙과도 같은 의식이었던 것이다.

어디엔가 고난의 땅 - 이승과 저승이 마주치는 것처럼 갯물과 바닷물이 와닿는 해변가 그리고 왜구들이 끝없이 침범한 은밀한 섬에 매향을 하면 그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무쇠처럼 단단해지고 그 향내는 이 지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윽한 침향이 된다는 믿음이다.이렇게 한국인들은 현세의 지속이 아니라 천년 뒤에 올 새로운 생명의 가치와 그 부활의 문화를 위해서 매향비를세웠던 것이다.지금도 국토의 여러곳에서 매향비가 발굴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우리 조상들은 천년뒤에 올 후손들을 위해서 향기로운 생명의 향기를 창조해 내는 향나무를 묻었다.과학적인 장치가 아니라 바닷물과 지열과 흙의 자연적인 힘이 천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속에서 형성해 내는 나무의 변화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을 밀봉하여 정지된 천년 뒤에 개봉하는 문화가 아니다.붕괴한 뒤에 복고하기 위한 문화,이미 있는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한번도맛보지 못한 이 세상의 그것과는 다른 정토의 맑고 깨끗한 세상이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공간 확충에 천년화(millenniumization)의 시간적 지속이 있을 때 우리의 사회는 완벽한 평화를 이룬다. 새 천년의 새로운 한국은 세계화의 한 손 원리만 가지고는 안된다.거기에 한국의 전통과 민족의창조력을 잇는 천년화의 또 한 손이 요구된다.타임 캡슐만 묻는 새 천년 맞이의 발상에 향목을 묻는 매향비의 새로운 의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새천년의 꿈을 두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된다.
1999-05-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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