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사진작가 주명덕 초대전

중진 사진작가 주명덕 초대전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1999-02-08 00:00
수정 1999-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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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사진작가 주명덕(59).그의 카메라 눈이 훑고 지나간 자연은 마치 태고의 암흑같다.‘빛의 예술’인 사진에서 굳이 빛을 거둬내기 위해 애쓰는 그의 사진은 이미 ‘풍경’사진이 아니다.자연은 피사체에 불과할 뿐,작가가바라보는 것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왜 ‘어둠’에 집착할까.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4)에서 3월4일까지 열리는 주명덕 초대전은 그 ‘블랙 추상’의 진실에 한발 다가서게 한다. 주씨는 66년 첫 전시회인 ‘홀트씨 고아원’전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자리매김됐다.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도 따랐다.그러나 그는 89년 ‘풍경’전 이래 지금까지 화면이 온통 시커먼 풍경사진 작업에 몰두해오고 있다.6·25의 상흔이나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달려온 기록사진가로서의 면모를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번 초대전에서는 지난 80년대와 최근 10년 동안 그가 풍경을 모티프로 해 찍은 흑백사진들을 선보인다.지리산,설악산,제주도 등전국의 명승을 돌며찍은 100여점의 작품이 나와 있다.잡목숲이나 이름없는 들꽃,바람에 눕는 풀 등을 짙고 어두운 톤으로 근접 촬영했다.영암사니 구룡령이니 건봉사니 하는 제목도 붙였다.하지만 촬영지를 나타내는 그 제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그의 사진에는 각 지방 특유의 풍경이 담겨 있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두고 ‘나를 찾아가는 풍경’이라고 했다.그에게 있어 풍경은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혹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다른 이름이다.그의 사진에는 황해도 안악 구월산 자락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원형적 풍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또한 일상속에 묻혀버린 시간,나아가 다가올시간의 무심함까지 오롯이 담겼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지만 풍경은 그것을소유하는 사람에게만 있다는 말이 있다.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진정한 자연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한낱 자연에 대한 이미지일 수 있다는 뜻이다.작가는 진정한 자연으로서의 풍경을 얻기 위해 사실적인 실경(實景)과 관념적인진경(眞景)의 세계를 교차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철스님에게 유일하게 포즈를 요구해가며 사진을 찍었던 그.모델 윤영실을 찍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콜타르처럼 까맣기만한 이 풍경사진은 낯설 수밖에 없다.사단(寫壇)의 동료와 평론가들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린다.어떤 이는 그의 ‘풍경 시리즈’작업을 한국화가 소정 변관식의 만년 작업에견주기도 한다.“그림이 너무 검다”고 주위에서 말하면 소정은 오기로 더욱 시커멓게 칠하곤 했다.그러면 사진작가 주명덕의 예술적 오기는 무엇일까.그는 “그저 직감으로 찍을 뿐”이라고만 말한다.일찌기 중국의 진욱이 얘기했던 사심론(寫心論)대로 주명덕은 마음으로 풍경을 찍는 듯하다.그의 풍경사진은 마음의 눈으로 봐야만 보인다.

1999-02-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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