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시신을 태우는 동안 화장장 굴뚝으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는 마치 영혼의 귀의를 연상시킨다. 한평생을 풍요로운 흐름으로 부드럽게 마감하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미처 다하지 못한 삶을 안타깝게 여 기며 흐느끼듯 이승을 하직하는 영혼도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 학의 거장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식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설묘지인 파리 페르 라쉐즈 묘지 작은 터에 안치되었고 명배우 장 가뱅도 시신이 화장되어 브르타뉴 바다에 뿌려졌다. 멀리 이국땅에서 숨진 애국자나 교포들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한 다음 그 유 골을 거두어 조국의 바다나 강,고향의 뒷동산에 뿌려달라고 유언한다. 부귀 영화를 누린 사람이나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을 막론하고 누구라 도 사람의 죽음은 경건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의 최후는 그것이 매장이 든 풍장이든 화장이든간에 짧게 치러져도 정중하고 엄숙한 의식이 당연하다. 만약 그런 인간의 마감을 앞에 두고 유골의 뒷거래를 한다면 생명경시의 차원을 넘어선 생명농락이기 때문에 이런 상행위가 다시는 발붙일 수 없도록 생명존중을 다짐해볼 때다. ‘노잣돈’ 명목으로 저승길에도 바가지를 씌운다는 화장장의 횡포는 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화장장에서는 노잣돈을 받지 않는다’고 현수막을 내걸고도 버젓이 유골흥정이 자행되었다는 보도는 경악을 금치 못 하게 한다. 더구나 유골을 매매한 당사자들이 시립 화장장에 근무하던 공무 원들이라는 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유골처리를 잘 해주겠다’고 유 골 한 구당씩 웃돈을 받는 것은 물론 웃돈을 주지 않으면 유골을 제대로 소 각하지 않거나 거칠게 분쇄하는등 횡포를 일삼았다니 더 이상의 파렴치를 상 상할 수 없다. 화성에서 물을 찾고 생명복제의 수준이 논란되는 시점에서 시 신을 태운 재를 마시면 불치병이 낫는다고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속 설을 맹신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를 미끼삼아 장사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화장은 단지 죽은 사람을 불에 태워서 처리하는 장법(葬法)의 하나다. 뼈를 추려 항아리나상자에 넣어 땅에 묻기도 하고 그 위에 묘비명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화장문화가 발달된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이제는 항아리를 땅에 묻지 않고 삼림에 뿌리는 살장(撒葬)이 정착된지 오래다. 미국에서는 지난 65년부터 살장이 합법화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만 한해 1만5,000여건이 녹지나 바다에 뿌려진다. 일본에서도 91년 이후 자연장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의 화장은 결국 좁은 국토를 좀더 아끼자는 데서 나온 장묘제도 개혁의 차원이다. 현재의 장묘관행이 계속될 경우 수도권은 3년이내,전국적으로 10 년 안에 집단묘지 공급이 한계에 도달하리라는 우려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 다. 따라서 사회지도층이 저마다 화장 서약을 하고 나서는 마당에 공무원이 유골가루 매매로 화장인구 확산에 재를 뿌린 격이다. 물론 매장은 안되고 화장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화장은 인위적 절차나 의례적 요소를 생략하고 인간의 생명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방식의 하나다. 우리의 장묘문화 개혁에 침을 뱉는 부도덕행위가 두번다시 자행되지않도록 무조건적 미신의 맹신에서 벗어나 인간의 최후는 자연의 일부임을 투철하게 자성해야 할 때다. [ sgr@]
1999-01-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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