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2월8일을 떠올려 보는 뜻은(박갑천 칼럼)

그해 12월8일을 떠올려 보는 뜻은(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8-12-07 00:00
수정 1998-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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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8일의 목포 북교국민학교(초등학교) 교정. 눈발이 흩날린 아침이었다. 유난히 땅딸막한 일본인교장이 단상에서 무언가 힘주어 읽고 있었다. 내용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른바 ‘선전(宣戰)의 조서(詔書)’로서 미국과 영국한테 낸 일본제국주의의 도전장이었다.

그뒤로 죽 이어진 전시체제. 전학간 해남에서 국민학생들은 솔뿌리를 캐야 했다. 실제로 썼던 건지는 모르지만 전선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운동장 구석에는 귀신몰골의 솔뿌리가 쌓이고 시커먼 기름을 짜내곤 했다. 운동장은 식량증산이라는 이름아래 깡그리 파헤쳐져 밭으로 되면서 고구마가 심어졌다. 그 사이 어린 마음속에 심어놓은 가미카제(神風) 일본 필승의 신념. 지금도 몇십곡쯤 거뜬히 부를수 있을만큼 각종 군가(軍歌)등 승전의 노래를 가르쳐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그들의 가공할 군국주의 교육이었다.

세월은 흘러 그 당시 소년들은 노년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오늘의 소년들이 문화개방등 자유로워진 교류의 물결속에서 그날과는 달라졌다는 얼굴색의일본과 숨결을 마주하고 있다. 저들의 압제속에 있던때와 달리 대등한 관계 속이라는 상황이긴 해도 핍박받고 자란 세대에게는 피해의식이 앙금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 보수정치인의 경망한 발언에도 지나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추웠던 운동장’의 기억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그동안의 행적으로 해서 ‘추웠던 운동장’세대들은 “당신들,그동안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요”하고 묻고싶어질 때가 많다. 겉이 아니라 속을 헤아려보면서. 사실 ‘사과’한번 어디 속시원히 한일이 있는 그들이던가. 여기서 〈사기〉(서남이열전)에 나오는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말뜻을 생각해보게 된다.

한(漢)나라때 서남지방에 야랑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마을 몇개 합쳐 이루어진 정도의. 한나라 사신이 가자 그나라 왕이 묻는다. “우리나라와 당신 나라와 어느쪽이 더 큰가요”. 우물안 개구리만도 못한 물음이었지만 이 말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저지를 수 있는 허물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교훈이 된다. 정말로 우리는 일본의 속마음을 어느정도 짚어보고 있는 시점일까.

사무라이 영화도 곧 보게 될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 문물이 들어오는 것보다 그를 받아들이는 우리쪽 체질이 더 중요한 것. ‘운동장세대’에게는 아직도 한나라 사자와 야랑왕 같은 거리감이 남아있다.<칼럼니스트>
1998-12-0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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