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업주­단속 공무원 뿌리깊은 공생관계

유흥업소 업주­단속 공무원 뿌리깊은 공생관계

이지운 기자 기자
입력 1998-07-13 00:00
수정 1998-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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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月 100만원이면 단속 치외법권”/정기상납 대가 불법 묵인·단속정보 흘려/“못주겠다” 배짱땐 보복단속 각오해야/구청직원들 ‘공짜술’ 등쌀에 아예 폐업도

“이게 뭡니까,30만원 더 넣어서 100만원 만들어 오세요”

K씨(55)는 당황스러웠다. 유흥가로 유명한 서울 A동에서 지역 유지 대접을 받으며 단란주점을 운영해온 지 10년째. 얼마전 신임 파출소장을 찾아가 건넨 70만원짜리 봉투가 퇴짜를 맞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K씨는 “부임 직후 ‘인사’를 안한 것이 꼬투리를 잡힌 것 같다”면서 “잠시라도 ‘관리’를 게을리하면 ‘밀월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K씨는 이 지역에서는 유력 인사로 통한다. 30여년을 살아온 토박이인데다 수년간 이 일대 업소 주인들의 모임 대표를 맡기도 했다. 웬만한 업주들은 K씨를 ‘형님’으로 모신다. 경찰 등 관내 공무원들의 면면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름을 줄줄 외고 신상을 손금 들여다보듯 한다.

때문에 단속 관청과 업주간의 밀착 관계도 훤하게 안다. K씨는 ‘파출소만 막으면 만사형통’이라고 말했다. 합동단속도 파출소가 ‘찍어주는 곳’에만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그래서 K씨는 관할 파출소에 정기적으로 상납을 해왔다. 파출소 직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K씨의 업소를 찾아온다. 그들이 올 때마다 30만원씩 ‘용돈’을 줬다. 방범대원이 있을 때는 한달에 한 두번 5만∼10만원씩 식사비를 주기도 했다. 설날 휴가철 추석 연말연시 등에는 따로 50만∼100만원의 떡값을 댔다. 덕택에 K씨는 단속이 나오더라도 단속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 수 있었다.

단속의 ‘치외법권지대’에서 영업을 해 온 K씨도 단속된 적이 있다. 업소문을 연 첫해,관할 경찰서 방범지도계에 한번 당했다. 이른바‘개업기념 단속’이었다. K씨는 “개업한 뒤 형식적으로 단속을 당해주는 것이 관례이고 그래야 서로 편하다”고 귀띔했다. 영업정지가 내려져도 영업은 계속할 수 있었다.

단속기관과 업주는 K씨의 경우처럼 상납과 묵인이라는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돈을 요구하면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못주겠다고 저항하다가는 고의성이 짙은 보복 단속을 당하기 십상이다.

지난 5월 서울지검 모 지청이 업소 단속에 나섰을 때의 일. 당시 단속팀은 출동을 나가기도 전에 업주들 사이에 단속 사실이 이미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단속반원은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모르겠다”면서 “업주와 공무원간의 뿌리깊은 공생관계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팀은 자체 조사를 통해 출동 직전 경찰차를 배차하는 단계에서 정보가 샜을 것으로 추정했다. 내부에 누군가 내통자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단속 관청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면 ‘특혜’를 누릴 수 있지만 밉보이면 영업이 불가능하다는 업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K씨의 업소 근처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L씨(45)는 돈은 돈대로 주고 단속은 단속대로 당했다.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외지인’인 L씨는 92년 문을 연 뒤 경찰 구청 소방서 세무서 등에 10여차례나 단속됐다. L씨는 얼마전 한번 단속을 받아 벌금과 변호사 비용 등으로 5천여만원을 날렸던 적도 있다. L씨는 한달 평균100만원 이상을 꼬박꼬박 바쳤는데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도 단속기관들도 돈을 받으면서도 실적을 채우려 한 때문일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외지인인데다 단속반원들이 L씨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도 한다.

서울 S구청 맞은 편에서 주점을 하던 P씨(40·여)는 구청직원들의 등쌀에 못이겨 최근 업소를 처분해 버리고 장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개업한 지 1년여만이었다. 언젠가 심야영업으로 단속된 뒤 영업정지 기간에 영업을 하도록 묵인해주는 대가로 구청 직원들에게 공짜술을 대접했다. 거저 주는 술값 부담도 만만치 않았지만 접대부 팁마저 내지 않아 P씨가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 구청 직원들은 나중에는 친구나 아는 사람들까지 P씨의 가게로 데려다 공짜술 접대를 했다.

P씨는 “술집을 경영하면서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IMF 사태보다 그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李志運 기자 jj@seoul.co.kr>
1998-07-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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