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과 약물피해/최은순 변호사(굄돌)

국민건강과 약물피해/최은순 변호사(굄돌)

최은순 기자 기자
입력 1998-06-15 00:00
수정 1998-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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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민운동을 드물게 결집시킨 대사건이 요근래 있었다.‘HIV(에이즈바이러스)사건’내지는 ‘에이즈 약해사건’이라고 불리는 것인데,에이즈바이러스가 혼합된 비가열 수입 농축혈액제재를 혈우병 환자들에게 수혈하여 에이즈에 감염시킨 사례이다.이로 인해 일본 내의 혈우병 환자 약 5,000명가운데 2,000명가량이 감염,3분의 2가 발병해서 또 그의 3분의 2가 사망했다.

1989년 오사카와 도쿄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96년 3월 피고인 제약회사 다섯 및 국가가 연대하여 감염자에게 4,500만엔씩 지급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법정화해로 끝났다.이외에도 일본에서는 이런 대형 약물피해소송이 많은데,국가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책임도 같이 거론된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약물피해가 일본에서처럼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아직 없었다.그런데 요즈음 보따리장수가 유입한 비아그라가 장안의 화제가 돼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여느나라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의약품이 갖는 유효성과 부작용이라는 양면성을 고려하여 약사법을 두고 의약품의 제조·판매·수입 등을 정부가 관리·감독한다.국민의 욕구를 과도하게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에 비춰 정부는 당면한 비아그라 문제에 조속히 처방전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욕구에 편승한 상술은 정부의 방침이나 태도결정을 언제나 앞질러가기 때문이다.몇나라에서 시행하는 일시적인 전면 수입금지 조치도 참고할 만하다.약에 관한 근본인식의 부족과 치료제를 정력제로 착각하는 문화풍토 그리고 성(性)만능주의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비아그라가 우리 사회의 첫 약해사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는가.

1998-06-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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