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觀軒/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靜觀軒/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이세기 기자 기자
입력 1998-04-29 00:00
수정 1998-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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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 들어가면 지금의 덕흥전 후원에 자리잡은 정관헌(靜觀軒)은 구리빛으로 고색이 창연하다.한눈에 보아도 다른 궁중건물과는 달리 녹색 단청이며 난간의 문양 등이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이 건물은 중앙의 석조전(石造殿)보다 10년 앞선 것으로 고종 4년(1900년)에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여 완공한 것이다.

정면의 지붕은 일본풍에다 둥근 창을 뚫었고 철제기둥과 난간의 문양도 사슴 소나무 박쥐 당초문이 투각되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는 하지만 철제가 주는 차가운 이미지와 기둥머리의 로마네스크장식,대리석 바닥과 돌벽 때문에 이질적인 서양풍이 강하다.한때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고종의 어진(御眞),순종의 예진(睿眞)을 모시기도 했으나 주로 고종이 연유처(宴遊處)로 사용하던 곳이다.모란꽃이 흐드러지게 핀 후미진 전각에 앉아 왕이 차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면서 나라 빼앗긴 설움을 정관(靜觀)으로 다스렸리라는 짐작이다.

문화재 관리국은 최근 정관헌의 보수공사에 착수,5월 중순까지 단청과 내부 도색을 끝내고 빠르면 7월부터 우리 음악을 들으면서 전통차를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60년대와 70년초까지는 이곳에 앉아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나 오래 폐쇄되다가 다시 개방한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문화재 보호라는 측면에서 모든 전통공간을 멀리 두고 바라보는 데그친다면 이는 ‘그림의 떡’처럼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우리 문화를 거리감없이 숨쉴 수 있도록 한국적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외국인이나 청소년들에게도 한낱 고궁이 아닌,지나간 역사의 그림자가 오늘의 세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다리로서 의미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고궁 뜰을 거닐다가 어디선지 들려오는 아악(雅樂)연주로 인해 우리의 문화는 한층 운치있고 생명감있게 꽃피울 수도 있다.비운의 고종이 어떤 생각에 젖어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었을까.한번쯤 정관헌에 들러 스스로를 체관(諦觀)하는 자세도 이 어지러운 세태를 살아가는데 진실한 휴식이 될 것도 같다.

1998-04-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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