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통령/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책 읽는 대통령/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8-02-18 00:00
수정 1998-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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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이삿짐은 이사 대행 업체들에게 환영받기 힘들듯 싶다.1주일 후 일산에서 청와대로 옮기는 김당선자의 이삿짐은 대부분 책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 대행 업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이 책 많은 집인데 김 당선자의 장서는 1만5천여권에 이른다.불과 몇백권의 장서를 가진 일반 가정의 이삿짐도 잔손 많이 가고 시간 많이 들고 무겁다고 싫어하는 업자들에게 이런 이삿짐은 액운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입장에선 참으로 보기 좋은 이삿짐이다.책을 읽는 대통령은 안 읽는 대통령보다 훨씬 믿음직스럽다.“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보르헤스)이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또 “도서관은 일종의 마술상자다.이 상자속에는 인류의 가장 좋은 정신들이 마술에 걸려 있다”(에머슨).우리 선조들도 한평생 다섯수레 분량의 책 읽기를 권장했다.

김 당선자의 장서는 다섯수레를 훨씬 넘어선다.그러나 조선조의 이름난 장서가들에는 못 미친다.영의정을 지낸 심상규는 4만권 이상을 소장했고 풍양조씨 세도가의 조병구는 3만∼4만권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두차례의 북경 방문(1614,1615년)에서 4천권의 책을 사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당시 우리 선조들의 서적 구입열에 대해 명나라의 문인 진계유는 이렇게 증언했다.“조선인은 책을 가장 좋아한다.사신의 입공은 50인으로 제한돼 있지만 옛책과 새책,패관소설로서 조선에 없는 것을 날마다 시중에 나가 책의 목록을 베껴 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두루 물어보고 비싼값을 아끼지 않고 구입해 간다”

물론 당시 책의 분량과 지금 책의 분량은 달라서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또 에머슨이 말했듯이 마술에 걸린 ‘인류의 가장 좋은 정신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마술상자를 여는 수고,즉 책을 읽어야 한다.김 당선자의 장서 1만5천권은 옥중에서,해외 망명길에서,동교동 자택 연금시절에 읽은 손때 묻은 책들이라 한다.

청와대 서고가 출판인들이 기증한 책이 아니라 손때 묻은 책들로 채워진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책 읽는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체,아니 전국민적인 것이다.
1998-02-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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