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화는 운명” 이젠 평화상징으로/미군주둔후 사고 잇따라… 평화운동 계기로/일 최고가수 아무로 배출… 번영·희망 심어줘
‘……눈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가나/그 흐름을 이 가슴에/꽃으로 꽃으로 맞아들이리 ……’
지난해 7월20일 애틀랜타 올림픽 문화이벤트가 열렸던 올림픽1백주년 기념공원에서는 오키나와 출신 가수 기나 쇼키치(희납창길·당시 48세)가 자신의 대표곡인 ‘모든 이들의 마음에 꽃을’을 열창하고 있었다.이 노래는 중국·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1천5백만장이 팔려 나갈 만큼 인기를 모은 곡.
그가 애틀랜타에 초청된 것은 오키나와 전통 가락에 바탕을 둔 호소력 강한 멜로디와 노래를 통해 평화운동을 지속해온 점 등이 높이 평가된 까닭이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점령된 이후 많은 고초를 겪었다.오키나와 언어는 고대 일본어로 추정되고 있지만 야마토인(오키나와인이 일본인을 부르는 이름)과 우치난추(오키나와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는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그들은 동중국해의 조그만 섬에서 노예도,무기도 없이 살아왔다.그들은 일본은 물론 중국·한국 등과 교류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들 땅에는 메이지(명치)유신 이후 일본 군대가 들어왔다.기지화의 시작이다.
전쟁 말기에는 일본 군인과 주민을 합쳐 1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당시 주민은 50여만명.전쟁과 군대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군 기지화였다.미군이 원인이 된 각종 사고와 살인 강간이 잇따랐고 이들 사고는 그들을 평화운동으로 이끌었다.
기자와 만난 기나는 “판문점은 인류의 마지막 게이트(통제구역으로 통하는 출입구)다.판문점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일본이라면 과거 역사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오키나와라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기나 쇼키치 못지않게 유명한 우치난추가 2명 있다.한명은 지사인 오타 마사히데(대전창수)고 또 한명은 대중가수 아무로 나미에(안실나미혜·20)다.
젊은 나이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 출신이지만 일본 최고가수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오키나와최대의 농작물 사탕수수가 1년에 2백억엔의 수입을 가져다 주지만 아무로 혼자서 지난해 벌어들인 돈이 2백50억엔을 웃돈다.아무로는 오키나와인들의 자랑이다.오타 마사히데 지사가 미군기지 강제사용을 위한 대리서명을 거부,일본정부와 미국정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과 함께 아무로의 활약은 오키나와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아무로가 나온 오키나와 아트 스쿨에서는 인기 가수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고 오늘도 제2의 아무로를 꿈꾸며 소녀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일본 연예계에서는 당분간 오키나와 선풍이 지속될 전망이다.
오키나와인들은 미국·일본 등 강한 것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던 끝에 최근 멀지 않은 곳에서 빛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평화를 향한 열망,번영을 향한 열망,이를 뒤받쳐 주는 자신감.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부터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메세지를 발신하는 기지가 되겠다는 의욕에 서서히 불을 붙이고 있었다.<오키나와=강석진 특파원>
‘……눈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가나/그 흐름을 이 가슴에/꽃으로 꽃으로 맞아들이리 ……’
지난해 7월20일 애틀랜타 올림픽 문화이벤트가 열렸던 올림픽1백주년 기념공원에서는 오키나와 출신 가수 기나 쇼키치(희납창길·당시 48세)가 자신의 대표곡인 ‘모든 이들의 마음에 꽃을’을 열창하고 있었다.이 노래는 중국·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1천5백만장이 팔려 나갈 만큼 인기를 모은 곡.
그가 애틀랜타에 초청된 것은 오키나와 전통 가락에 바탕을 둔 호소력 강한 멜로디와 노래를 통해 평화운동을 지속해온 점 등이 높이 평가된 까닭이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점령된 이후 많은 고초를 겪었다.오키나와 언어는 고대 일본어로 추정되고 있지만 야마토인(오키나와인이 일본인을 부르는 이름)과 우치난추(오키나와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는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그들은 동중국해의 조그만 섬에서 노예도,무기도 없이 살아왔다.그들은 일본은 물론 중국·한국 등과 교류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들 땅에는 메이지(명치)유신 이후 일본 군대가 들어왔다.기지화의 시작이다.
전쟁 말기에는 일본 군인과 주민을 합쳐 1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당시 주민은 50여만명.전쟁과 군대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군 기지화였다.미군이 원인이 된 각종 사고와 살인 강간이 잇따랐고 이들 사고는 그들을 평화운동으로 이끌었다.
기자와 만난 기나는 “판문점은 인류의 마지막 게이트(통제구역으로 통하는 출입구)다.판문점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일본이라면 과거 역사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오키나와라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기나 쇼키치 못지않게 유명한 우치난추가 2명 있다.한명은 지사인 오타 마사히데(대전창수)고 또 한명은 대중가수 아무로 나미에(안실나미혜·20)다.
젊은 나이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 출신이지만 일본 최고가수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오키나와최대의 농작물 사탕수수가 1년에 2백억엔의 수입을 가져다 주지만 아무로 혼자서 지난해 벌어들인 돈이 2백50억엔을 웃돈다.아무로는 오키나와인들의 자랑이다.오타 마사히데 지사가 미군기지 강제사용을 위한 대리서명을 거부,일본정부와 미국정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과 함께 아무로의 활약은 오키나와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아무로가 나온 오키나와 아트 스쿨에서는 인기 가수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고 오늘도 제2의 아무로를 꿈꾸며 소녀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일본 연예계에서는 당분간 오키나와 선풍이 지속될 전망이다.
오키나와인들은 미국·일본 등 강한 것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던 끝에 최근 멀지 않은 곳에서 빛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평화를 향한 열망,번영을 향한 열망,이를 뒤받쳐 주는 자신감.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부터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메세지를 발신하는 기지가 되겠다는 의욕에 서서히 불을 붙이고 있었다.<오키나와=강석진 특파원>
1997-07-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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