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식량 보내기/박정란 방송작가(굄돌)

북한에 식량 보내기/박정란 방송작가(굄돌)

박정란 기자 기자
입력 1997-05-21 00:00
수정 1997-05-2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적게든 많이든 「북한에 식량 보내기」운동에 참여했으리라 생각한다.우리 아이들의 햄버거 한개 값도 안되는 700∼800원이 북한 어린이 한달 식량이 된다는 사실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그나마도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아사직전이라니 기가 막힌다고밖엔 이런 심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은 만나면 당연히 한보 이야기 아니면 북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식량이 제대로 북한 동포에게 전달되는지 믿을수가 없어 식량 보내기운동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후배가 있었다.그 말이 왠지 내 심사를 꼬이게 했다.그래서 퉁명스럽게 네가 할 일은 식량 보내기 운동에 동참을 하는 것까지만이고 보내는 방법은 또 그 일을 맡은 사람의 몫이니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유기하지 말라고 해버렸다.그러면서 오래전 내가 잠깐 갈등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70년대에는 명동이나 육교에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여자나,한겨울 얇은 옷 한겹에 맨발로 동태처럼 얼어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나는 내앞에 이런 사람이 있을때 아무리 바쁘고 또 돈을 꺼내기가 귀찮아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를 내 생활의 작은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그런데 어느날 신문에 그것이 다 가짜라는 기사가 났다.사실이 아니고 연출을 한다는 것이었다.아이는 빌려서 안고 있는 것이고 꽁꽁 얼어 시멘트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도 뒤에서 조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나는 순간 분노를 느꼈다.결과적으로 나는 악을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걸인을 돕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계기가 되었다.육교에서 추위에 떨며 기진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가,그리고 동태가 되어 시멘트바닥에 엎드려 있는 소년이 가짜인지,정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내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가 가짜라면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이지 내 잘못은 아닌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다시옛날의 작은 원칙으로 돌아갔다.별것도 아닌 이런 내 얘기를 들은 후배도 아마 북한동포 식량 보내기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싶다.

1997-05-21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