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충격에 망연자실한 남정네/아낙은 영문모른채 ‘휘둥그래’
조선시대 도자공예에는 명기가 있다.여기서 명기는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죽은 이들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넣어주는 껴묻거리인 것이다.어두운 무덤속으로 들어간 기물이었을지라도,밝은 내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그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신라에서는 흙인형 토우나 토기를 명기로 썼다.그리고 고려 사람들은 청자그릇을 무덤에 묻어 먼저 간 죽은 이들의 저 세상을 걱정해주었다.
조선시대에 도자로 구워낸 명기는 16∼17세기 무덤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이 시기는 백자철화가 유행했던 때여서 백자철화인형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또 실제 전해오는 인형명기도 철화계통이 많다.철화백자는 산화철 무늬가 들어간 백자다.쉽게 말하면 무쇠의 녹으로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인 것이다.그래서 무늬의 빛깔은 이른바 고동색이라는 적갈색을 띠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인형명기는 철화를 효과적으로 응용한 도자공예다.이 철화명기는 남녀 두 쌍에 홀로 선 문관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이들 다섯 인형의 키는 6.6∼8.7㎝에 불과했다.그렇듯 키가 작은 인형들이지만,표정은 살아있다.더구나 가운데 끼인 인형 한 쌍의 얼굴에는 다른 인형들에 비해 감정이 폭넓게 드러났다.표정이 풍부하기로 말하면 만점인 것이다.
한 쌍의 인형은 부부인 듯하다.상투머리를 한 남정네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읍하는 자세로 서 있다.귀와 눈두덩,인중과 턱은 코와 함께 덧붙여 얼굴 윤곽이 질감있게 표현되었다.인중과 턱이 유별나게 긴 남정네는 입을 벌렸다.그냥 헤벌린 입이 아니고,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 상태다.눈은 동공만을 동그랗게 그렸다.그래서 놀라는 눈이 되었다.
아낙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놀라워하는 남정네 기색에 그만 놀란 것일까.아낙은 남정네 얼굴을 살피고 있다.남정네가 그토록 놀라워하는 까닭을 아낙은 곧 알아차릴 것이다.어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리고 북망산한 자락 땅속으로 들어갈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그렇게 명기는 죽은 이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다.
이들 인형명기의 표정은 철화,또는 철채라는 색깔이 좌우했다.백자 바탕에서 고동색 철화무늬가 꽃피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시기다.<황규호 기자>
조선시대 도자공예에는 명기가 있다.여기서 명기는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죽은 이들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넣어주는 껴묻거리인 것이다.어두운 무덤속으로 들어간 기물이었을지라도,밝은 내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그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신라에서는 흙인형 토우나 토기를 명기로 썼다.그리고 고려 사람들은 청자그릇을 무덤에 묻어 먼저 간 죽은 이들의 저 세상을 걱정해주었다.
조선시대에 도자로 구워낸 명기는 16∼17세기 무덤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이 시기는 백자철화가 유행했던 때여서 백자철화인형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또 실제 전해오는 인형명기도 철화계통이 많다.철화백자는 산화철 무늬가 들어간 백자다.쉽게 말하면 무쇠의 녹으로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인 것이다.그래서 무늬의 빛깔은 이른바 고동색이라는 적갈색을 띠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인형명기는 철화를 효과적으로 응용한 도자공예다.이 철화명기는 남녀 두 쌍에 홀로 선 문관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이들 다섯 인형의 키는 6.6∼8.7㎝에 불과했다.그렇듯 키가 작은 인형들이지만,표정은 살아있다.더구나 가운데 끼인 인형 한 쌍의 얼굴에는 다른 인형들에 비해 감정이 폭넓게 드러났다.표정이 풍부하기로 말하면 만점인 것이다.
한 쌍의 인형은 부부인 듯하다.상투머리를 한 남정네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읍하는 자세로 서 있다.귀와 눈두덩,인중과 턱은 코와 함께 덧붙여 얼굴 윤곽이 질감있게 표현되었다.인중과 턱이 유별나게 긴 남정네는 입을 벌렸다.그냥 헤벌린 입이 아니고,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 상태다.눈은 동공만을 동그랗게 그렸다.그래서 놀라는 눈이 되었다.
아낙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놀라워하는 남정네 기색에 그만 놀란 것일까.아낙은 남정네 얼굴을 살피고 있다.남정네가 그토록 놀라워하는 까닭을 아낙은 곧 알아차릴 것이다.어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리고 북망산한 자락 땅속으로 들어갈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그렇게 명기는 죽은 이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다.
이들 인형명기의 표정은 철화,또는 철채라는 색깔이 좌우했다.백자 바탕에서 고동색 철화무늬가 꽃피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시기다.<황규호 기자>
1997-02-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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