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김영진·유송일씨 가족 일문일답

귀순 김영진·유송일씨 가족 일문일답

입력 1997-01-31 00:00
수정 1997-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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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티 안내려 깨끗한 옷 준비”/인사문제 다투다 출당돼 귀순 결심/남한 쇠고기수입 반대 이해 못했다

귀순가족 김영진·유송일씨 일가 8명은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북후 중국을 경유,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최근의 북한 실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풍랑 거세 죽을뻔했다

­인천항에 도착했을때의 모습이 심한 풍랑을 겪은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건강했는데.

▲김영진=지난해 3월 북한을 탈출한 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남한으로 오는 배를 탈 수 있었으나 밀항선을 탔을 때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풍랑이 매우 거세 아이들은 심한 멀미를 했다.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 난 뒤였기에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표정이 밝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옷차림이 깨끗했던 것은 탈북자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미리 깨끗한 옷을 준비했기 때문이다.연극은 없었다.

○형·어머니가 일부 도와

­해광군(김씨의 차남)이 일기를 쓰게 된 배경은? 곳곳에 서로 다른 필체가보이는데.

▲김해광=두만강 부근에서 방랑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썼다.먼 훗날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틈틈이 메모해둔 것을 바탕으로 일기를 썼다.글씨체가 다른 것은 중국 체류 당시 우리를 도와준 「박사장」이란 사람이 『일기를 쓴 것을 줘야 한국에 빨리 갈 수 있다』고 해 일기를 여러권 만드느라 그랬다.형과 어머니가 내 일기를 베껴 전달했다.

○섬에서 불피우며 대기

­안기부의 귀순 발표가 구조시간보다 먼저였는데,구조당시 상황은.

▲김영진=남한으로 올때 마음이 불안해 시간개념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선원들이 『풍랑으로 시간이 늦어졌다』며 배에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당시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났을 것이란 생각만 들었다.섬에 내려 불을 피우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을 때 멀리서 배가 보였다.우리가 『살려주세요』를 계속 외치며 구조를 요청하자 배에서 『조용하라.가만 앉아있으라』는 방송이 들렸다.배가 너무 커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자 작은 보트로 3명이 왔다.이들은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물었다.배에 쓰여진 글자가 북한의 글자와 달랐기 때문에 남한에 왔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북한에서 왔다』고 하자 『수고했다.타라』고 했다.보트를 타고 건너가는 때까지 30분 정도 걸렸다.배에서 해경의 헬기를 타고 인천항으로 왔다.

○해고돼 노동자로 전락

­귀순동기는.

▲유송일씨=24년간의 군복무 기간동안 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남한사회와 귀순자들의 삶을 알고 있었다.제대후 95년 1월쯤 청진 오중흡대학 후방부 관리과에서 근무하던중 사무실에서 노동신문에 난 남한 청년학생들의 쌀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관련 기사를 읽었다.기사를 읽으면서 『남조선은 왜 그 좋은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된다.쇠고기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 때문에 엄한 조사를 받았다.결정적인 동기는 그해 8월 인사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상급자와 다툰 적이 있다.

이때부터 그가 사회안전부 요원을 동원,저를 모해하기 시작해 급기야 11월에 당에서 쫓겨났고 직장에서도 해고돼 노동자로 전락했다.나름대로 김정일을 위해 24년동안군에서 충성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더이상 김정일 체제 아래서는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이들 앞날도 걱정이 됐다.

○통행료로 낙지 등 준비

­국경을 통과할 때 안전부 요원을 만났을텐테 「통행료」라는 것을 주었는가.

▲유송일=24년간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국경 경비의 허점이 어디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발각될 것에 대비,경비대 매수용으로 낙지 10㎏과 북한돈 2만원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두만강을 건널때 안전부의 감시망을 피했기 때문에 통행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배 탈때까진 서로 몰라

­두 가족이 함께 귀순하게 된 경위는.

▲유송일=김영진씨 가족을 전혀 알지 못했다.배에 같이 탑승했을 때 「이들도 한국에 가는 모양이구나」하고 생각했다.<박준석 기자>
1997-01-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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