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산으로 1879년생.그가 만주의 하얼빈에서 한국침탈의 선봉장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사살한 것이 1909년,서른살 때이고 일본의 재판정에서 사형언도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 이듬해인 1910년,서른 한살 때의 일이다.
위대한 인물의 위대성은 범인들이 감득키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불과 서른 한해의 짧은 생애동안 안의사가 세상에 남긴 족적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그는 계몽가였고 교육자였으며 의병장이었고 또한 사상가였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빛나는 업적들은 그의 하얼빈 쾌거에 가려 잘 알려져있지 않은 측면이 있다.
25세때인 1904년 평남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했고 1907년에는 북간도로 넘어가 의병을 모집,항일무력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위대성은 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이다.안의사가 법정에서 그토록 열변으로 주장했고 옥중에서 글로써 남긴 그의 「동양평화론」의 요체는 조선 일본 중국이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연합,구미열강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오늘의 유럽연합(EU)과 같은 개념이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막연한 공론이 아니라 세나라가 공동출자한 「동방은행」을 설립해 필요한 산업을 육성하고 어려운 입장에 처한 나라도 지원하자는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그의 필적이 뛰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런 안의사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아버지의 서당에서 배운 한학 9년이 모두라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의사 순국 86주년이 되는 26일 일본에서는 「안중근 연구회」가 발족해 눈길을 모은다.
일본인학자 20여명이 중심이 돼 발족된 연구회의 목적은 지난해 서울에서 발족된 「국제안중근연구회」와 협력해 안의사의 전기를 바로 쓰고 그의 동양평화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21세기 동양평화의 진로를 모색해보자는 것.
우리는 항용 일본인의 협량을 말하지만 한국에 「이등박문연구회」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임춘웅 논설위원〉
위대한 인물의 위대성은 범인들이 감득키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불과 서른 한해의 짧은 생애동안 안의사가 세상에 남긴 족적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그는 계몽가였고 교육자였으며 의병장이었고 또한 사상가였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빛나는 업적들은 그의 하얼빈 쾌거에 가려 잘 알려져있지 않은 측면이 있다.
25세때인 1904년 평남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했고 1907년에는 북간도로 넘어가 의병을 모집,항일무력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위대성은 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이다.안의사가 법정에서 그토록 열변으로 주장했고 옥중에서 글로써 남긴 그의 「동양평화론」의 요체는 조선 일본 중국이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연합,구미열강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오늘의 유럽연합(EU)과 같은 개념이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막연한 공론이 아니라 세나라가 공동출자한 「동방은행」을 설립해 필요한 산업을 육성하고 어려운 입장에 처한 나라도 지원하자는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그의 필적이 뛰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런 안의사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아버지의 서당에서 배운 한학 9년이 모두라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의사 순국 86주년이 되는 26일 일본에서는 「안중근 연구회」가 발족해 눈길을 모은다.
일본인학자 20여명이 중심이 돼 발족된 연구회의 목적은 지난해 서울에서 발족된 「국제안중근연구회」와 협력해 안의사의 전기를 바로 쓰고 그의 동양평화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21세기 동양평화의 진로를 모색해보자는 것.
우리는 항용 일본인의 협량을 말하지만 한국에 「이등박문연구회」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임춘웅 논설위원〉
1996-03-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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