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동문안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2)

전북 부안 동문안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2)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6-02-09 00:00
수정 1996-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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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쓰고 마을가는 이웃집 할아버지상/수장승이 암장승보다 키 작고 몸도 여려

한국의 인상이 각인된 풍물의 하나인 장승에는 가식이나 허식이 없는 어줍은 솜씨가 깃들였다.장승에서 자연스럽고도 소박한 민예의 정감이 우러나는 까닭도 여기있다.그런데 나무장승은 비바람에 오래 견디어 내지 못하는 수명의 한계성을 지녔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출현한 것이 돌장승이다.

돌장승은 조선후기인 17세기말부터 18세기전반에 걸치는 시기에 나타났다.돌장승에 새긴 기명이나 관련자료에 따르면 가장 이른 시기의 돌장승은 전북 부안군 부안읍내 두 군데에 자리한 돌장승들이다.이 가운데 조선시대의 부안읍성동문 청원루에서 가까운 부안읍 동중리3구의 돌장승 한쌍 동문안 장승이 있다.장승 유형을 굳이 분류하면 읍장승이라 할 수 있다.옛 고을에 읍성을 쌓고 그 앞에다 세운 장승이기 때문이다.

이들 암수 돌장승 한쌍은 동문안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모두 화강석으로 투박하게 깎아 기대석 위에 세웠다.여기 사람들은 수장승은 당산하나씨,암장승은 당산할머니라고 불렀다.당산하나씨 수장승은 당산할머니 암장승보다 50여㎝정도 작은 1백80㎝의 키를 했다.몸둘레도 수장승이 더 가늘다.수장승과 암장승에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이라고 각각 오목새김한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수장승은 벙거지를 썼다.몸전체에 굴곡이 진 쪽도 수장승이다.암장승의 네모꼴 기둥형 몸통에 비해 동적 유연성이 수장승에서 더 엿보였다.얼굴은 달걀형으로 갸름한데 이마에는 백호를 새겼다.양쪽 귀는 본래 실했던듯 싶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눈가장자리를 깊게 오목새김으로 파놓아 눈망울이 주먹만하게 보이고 이빨을 드러냈다.그리고 큼직한 콧방울께서 시작한 돋을새김 볼록선을 귓가를 향해 돌렸다.얼핏 수염인가 했으나 사실은 볼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표현기법임이 이내 드러났다.

커다란 눈망울 위에 바짝 붙은 눈썹이 무척 가늘다.그래서 수장승 당산하나씨가 무섭잖게 보이는데 눈썹이 한몫을 거들었다.수장승에 비록 신성을 가미했겠지만 그저 갓쓰고 마을가는 부안사람 할아버지 표정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현존하는 돌장승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그룹에 속한다.그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간접적 징표가 있다.

이들 동중리 동문안 돌장승과 같은 시기에 세웠을 서외리 서문안 장승과 솟대당산 석간석의 새김글씨가 그것이다.이 석간석에는 청나라 연호로 강희 28년에 세웠다고 기록했다.

1689년의 일이다.그러니까 서문안 장승을 세우면서 같은 때 동문안 장승도 읍장승으로 함께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동문안 장승을 일러 문지기장군이라 하는 것은 부안읍성 축조 당시 이미 지킴기능을 부여한 흔적일 것이다.

이들 돌장승 한쌍은 나이가 꽤 들어서인지 성에는 관대한 모양이다.정월 보름께 당산제 제의놀이로 그 앞에서 남녀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할 때면 서로 심한 음담이 흉허물없이 오간다는 것이다.<황규호기자>
1996-02-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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