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좇는 이민삶 조명/김인숙 장편 「먼길」문학동네서 출간

「정체성」 좇는 이민삶 조명/김인숙 장편 「먼길」문학동네서 출간

입력 1995-09-28 00:00
수정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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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4개월 호주생활 체험 토대로 집필

작가 김인숙씨(32)가 새 장편 「먼 길」을 문학동네에서 냈다.1년4개월간의 호주생활을 막 청산하고 돌아온 작가의 직접 체험이 배어있는 소설이다.

지난 83년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돼 등단한 작가는 일탈적 연애풍경을 능란한 심리묘사로 그린 당사자가 갓 스무살의 대학 1학년생이라는 점때문에 유달리 주목의 대상이 됐다.하지만 당시 사회현실에서 글재주가 마냥 축복일수만은 없었던 그는 언제부턴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80년 서울의 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점묘한 장편 「79∼80 여름에서 봄까지」,삶의 현장이 곧 연애의 터전이라는 요지의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가부장적 결혼과 옹졸한 소시민의식을 해부한 단편집 「칼날과 사랑」 등이 그의 주요작품.뒤틀림을 정직하게 공격하면서도 상처를 감싸는 성숙한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의 새 작품 「먼 길」은 젊은 날 고국의 현실에 쓴 맛을 보고 호주로 이민온 세사람의 바다낚시 여행을 중심으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며 전개된다.낚싯배의 선장인 한림은 70년대 통기타 가수였다가 자신의 앨범 타이틀곡이 금지곡이 되자 가족도 버린채 호주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명우는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이젠 이곳 빌딩의 청소부가 돼 마네킹들 사이에서 평정심을 찾는 무력한 모습으로 변했다.한림의 동생 한영 역시 고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 이민왔으나 조건좋은 현지회사를 때려치우는 등 방황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난바다에서 날선 말들로 서로를 공격하며 체념어린 회상에 잠기는 이들은 허깨비같은 무력감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한다.「우리의 길은 옳았는데 우리의 삶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하지만 한영은 오랜 진통끝에 상처와의 정면대결만이 실마리임을 불쑥 깨닫는다.「지금 필요한 것은 잊는 것이 아니야.상처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온가슴이 문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는 소설의 결론은 불명료하고 어설픈대로 우리들에게 정체성 찾기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숙제로 던진다.<손정숙 기자>

1995-09-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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