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체감」 높이는 집 지어야”/바쁜 현대생활속 「단란한 가족상」 붕괴/주거공동체 회복에 건축가 노력 필요
「주택 전람회단지 참여작가」는 25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주택협회 분당 주택전시관에서 「새로운 시대,우리의 주거문화」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주거문화의 현실을 짚어보고 미래의 주거모형을 제시한 서울대 건축과 김광현 교수의 「주거 공동체의 현대적 회복」이라는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주거 공동체는 흔히 주택과 주택이 모여 전체를 이룰 때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과거 토지와 마을의 공동체에 크게 얽매어 있던 전통적인 주거 공동체는 요즘 크게 바뀌고 있다.특히 가족은 기본적인 주거 공동체이면서도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하고 있다.
아이는 10대만 되면 가족의 관리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회적 채널을 가지려 한다.남자는 가정인으로서 존재감이 없어지고 여성의 역할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최근 50년동안 가족의 수나 구성원의 역할,가족과 가족과의 관계,사회의 접촉방법도 많이 바뀌었다.그러나 이러한생활상을 담는 주거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유형의 주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결국 주택은 있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주거문화는 없는 셈이다.
오늘날 주택의 평면은 평균 4인의 「희망적」인 가족생활을 가정한 것이다.주거 공동체의 현대적 회복을 생각한다면 주택을 더 이상 거실·식당·침실의 조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능적인 방들의 조합은 근대적인 가족 공동체라는 환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그러나 근대적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는데 따라 거실은 중심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다.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도 리빙 룸은 똑 같다는 것은 문제이다.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의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설계에 보다 다양한 가족상을 반영함으로써 조그만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조건은 주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품격이다.주택이란 그저 한 개인이 가족과 함께 사는 일정한 터가 아니다.주택은 개인의 생활을 박탈하는 카오스와 같은 도시 생활에서 유일하게 남은 안식처이다.그 곳은 크건 작건,개인의 건강한 정신이 보장되는 친밀한 공간이 돼야 한다.
주거 공동체의 회복에 필요한 것은 도로와 빈 터에서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치를 만드는데 있지 않다.실제로 사는 사람은 그저 스치고 지날 뿐인데도 건축가가 그것을 공동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산이다.
또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은 일정한 가족상으로부터 벗어났는데도 건축가가 거실에 함께 모인 단란한 가족상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그리려 한다면,그것도 오산이다.이런 조건에서는 아무런 공동체도 만들어 낼 수 없다.이미 현대인과 그 가족은 이러한 허구의 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상을 인정하고,이를 반영하는 주택을 개발하는 것이 건축가가 할 일이다.진정한 주거 공동체의 불가결한 요건은 은신처로서의 주택이 지니는 「내밀성」에 있다.이는 결코 폐쇄된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자가 자연과 토지에 감사하고 그 안의 한 가족이,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서 제각기 살더라도 모여 사는 것을 고맙게 여기며,집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정서적 측면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족의 공동체가 생겨날 수 없다.
사는 자의 품격과 정신이 올바로 깃들지 않으면 가족의 공동체가 형성될 리 없고,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는,전체로서의 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이를 건축가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건축가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인 것은 사실이다.
「주택 전람회단지 참여작가」는 25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주택협회 분당 주택전시관에서 「새로운 시대,우리의 주거문화」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주거문화의 현실을 짚어보고 미래의 주거모형을 제시한 서울대 건축과 김광현 교수의 「주거 공동체의 현대적 회복」이라는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주거 공동체는 흔히 주택과 주택이 모여 전체를 이룰 때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과거 토지와 마을의 공동체에 크게 얽매어 있던 전통적인 주거 공동체는 요즘 크게 바뀌고 있다.특히 가족은 기본적인 주거 공동체이면서도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하고 있다.
아이는 10대만 되면 가족의 관리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회적 채널을 가지려 한다.남자는 가정인으로서 존재감이 없어지고 여성의 역할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최근 50년동안 가족의 수나 구성원의 역할,가족과 가족과의 관계,사회의 접촉방법도 많이 바뀌었다.그러나 이러한생활상을 담는 주거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유형의 주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결국 주택은 있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주거문화는 없는 셈이다.
오늘날 주택의 평면은 평균 4인의 「희망적」인 가족생활을 가정한 것이다.주거 공동체의 현대적 회복을 생각한다면 주택을 더 이상 거실·식당·침실의 조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능적인 방들의 조합은 근대적인 가족 공동체라는 환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그러나 근대적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는데 따라 거실은 중심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다.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도 리빙 룸은 똑 같다는 것은 문제이다.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의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설계에 보다 다양한 가족상을 반영함으로써 조그만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조건은 주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품격이다.주택이란 그저 한 개인이 가족과 함께 사는 일정한 터가 아니다.주택은 개인의 생활을 박탈하는 카오스와 같은 도시 생활에서 유일하게 남은 안식처이다.그 곳은 크건 작건,개인의 건강한 정신이 보장되는 친밀한 공간이 돼야 한다.
주거 공동체의 회복에 필요한 것은 도로와 빈 터에서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치를 만드는데 있지 않다.실제로 사는 사람은 그저 스치고 지날 뿐인데도 건축가가 그것을 공동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산이다.
또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은 일정한 가족상으로부터 벗어났는데도 건축가가 거실에 함께 모인 단란한 가족상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그리려 한다면,그것도 오산이다.이런 조건에서는 아무런 공동체도 만들어 낼 수 없다.이미 현대인과 그 가족은 이러한 허구의 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상을 인정하고,이를 반영하는 주택을 개발하는 것이 건축가가 할 일이다.진정한 주거 공동체의 불가결한 요건은 은신처로서의 주택이 지니는 「내밀성」에 있다.이는 결코 폐쇄된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자가 자연과 토지에 감사하고 그 안의 한 가족이,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서 제각기 살더라도 모여 사는 것을 고맙게 여기며,집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정서적 측면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족의 공동체가 생겨날 수 없다.
사는 자의 품격과 정신이 올바로 깃들지 않으면 가족의 공동체가 형성될 리 없고,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는,전체로서의 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이를 건축가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건축가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인 것은 사실이다.
1995-09-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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