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테린브르크(시베리아 대탐방:23)

에카테린브르크(시베리아 대탐방:23)

이기동 기자 기자
입력 1995-07-13 00:00
수정 1995-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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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일가의 슬픈역사 간직/4자녀·부부 함께 볼세비키들에 의해 처형 당해 비참한 최후맞은 통나무집 자리엔 추모비만/우랄산맥 벗어나 서시베리아로 다시 끝없는 평원이…

굳이 에카테린부르크를 찾은 이유중 하나는 볼셰비키들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은 비운의 러시아 마지막 황제일가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함이었다.비록 왕정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어린 자녀 4명과 함께 유배지의 지하실방에서 처형당한 차르 니콜라이부부의 비극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택시기사는 이 비극의 장소를 쉽게 찾아냈다.그러나 황제일가가 최후를 맞았다는 2층 통나무집은 옐친대통령이 이곳 당제1서기를 할 때 허물어버려 지금은 흔적도 없고 대신 그 자리에 작은 목조교회와○옐친이 건물 허물어

추모비가 들어서 있다.황제일가가 처형당했다는 지하실방으로 통하는 입구는 흔적이 남아 있으나 쇠줄로 출입구를 봉쇄해놓았다.

추모비는 「순교비」로 명명돼 있었고 황제일가의 죽은 시각을 19 18년7월17일부터 18일 사이의 새벽으로 밝히고 있다.그리고 차르 니콜라이,차르비 알렉산드라와 함께 황태자 알렉시,공주인 올가·타치아나·마리아·아나스타시아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왕정에 향수를 가진 미국·유럽인 사이에 아나스타시아공주가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나 외국으로 도피했다는 억측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이곳 사람들은 이를 터무니없는 낭설로 일축했다.미국영화 「아나스타시아」에 나오는 황제일가의 살해장소도 사실은 영화속같이 완전 지하실방이 아니라 우랄식 반지하방이었다.

당시 이곳 지방 볼셰비키들은 옴스크에 있던 백군 콜차크부대가 진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혁명직후 튜멘주의 토볼스크를 거쳐 이곳에 유배돼 있던 황제일가를 서둘러 처형했다.이 처형을 레닌이 직접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들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그 수일 뒤 7월25일 에카테린부르크는 백군부대가 점령했다.

이외에 에카테린부르크에는 러시아기계공업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우랄마시」가 있다.에카테린부르크가 자랑하는 것 두가지만 꼽으라면 이곳 사람들은 서슴없이 「우랄마시」와 우랄 돌을 꼽는다.우랄마시,즉 우랄중공업기계공장은 지난 28년 소련정부가 제1차경제개발계획의 핵심사업으로 시작해 33년 완공한 러시아 최대 중공업공장이다.냉장고에서부터 탱크·우주선부품까지 다 만들어내는 공장인데 길이가 공장정문에서 맞은 편으로 5㎞,좌우로 각각 5㎞라니 공장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우랄마시와 관련,재미있는 것은 시내중심가에서 5㎞ 떨어진 이 공장정문앞의 「1차 5개년계획 광장」주위에 세워져 있는 노동자숙소다.공장을 세우면서 이곳에 노동자숙소를 함께 건설했는데 노동자수가 늘어나며 30년대·40년대·50년대의 전형적 아파트건물이 나란히 세워져 당시 사회주의 건물양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명물인 우랄 돌의 진수를 감상하려면 지난해 개통된 지하철역 구내 플랫폼의 장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각종 우랄석으로 바닥·벽·천장을 장식해 마치 우랄석 전시장에 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그리고 역마다 실내장식을 다른 종류의 돌로 해놓았다.

우랄의 최고대학으로 꼽히는 키로프종합대학도 이곳의 자랑거리다.1916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할 때 바르샤바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유서깊은 대학이다.정문앞에 서 있는 대형 키로프의 동상을 보며 늙수그레한 택시기사는 대뜸 이렇게 말을 거들었다.혁명 뒤 키로프는 레닌·스탈린과 함께 혁명의 심벌이었는데 스탈린이 그를 죽였다며 『그것은 물같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스탈린은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모두 수용소로 보내거나 죽이고 아니면 망명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출발 3일째 되는 날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8시30분 옴스크행 열차를 탔다.시베리아인을 뜻하는 「시베리야크」호였다.옴스크까지는 꼭 12시간이 걸려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게 된다.

여행중 신통하게 느껴지는 일중 하나는 기차칸의 좁은 침대가 안락한 호텔방보다 더 평안하고 깊은 잠을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다.그래서 중간기착지에 들러 호텔에서 밤을 지내노라면 어서 빨리 기차를 다시 타고 싶은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기차여행에도 물론 맹점이 있다.가장 큰 문제는 밤중에 잠자는 시간에 지나가는 역이나 풍경은놓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낮에만 이동하고 밤에는 기차에서 내려 호텔신세를 지는 것도 여의치는 않다.구간별로 낮에만 이동하는 열차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떤 특정구간은 별도리없이 밤에만 지나갈 수밖에 없다.이날도 오일의 수도로 일컫는 튜멘주를 밤중에 통째로 지나가게 됐다.

○어느덧 서시베리아에

우랄산맥을 벗어나 서시베리아로 들어서면서 다시 끝없는 대평원이 이어지고 있다.어둡기 전 1905년 오데사혁명 때 반란을 일으킨 수병들의 유형지이던 카뮈실로프역이 지나갔다.인구 3만3천명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우랄과 서시베리아간 옥수수의 주거래지로 이름높은 곳이다.

잠자는 도중 튜멘시와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이던 얄루토로프스키역등이 지나갔다.튜멘은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북부의 석유·가스전을 총괄하는 소위 시베리아석유의 수도다.16세기 이반 그로즈니시대때 서시베리아를 차례로 정복한 예르마크장군이 건설한 도시다.서시베리아 절반을 이 사람이 정복했다.그래서 당시 이곳에 살던 카자흐인은 지금도 그를 민족 최대의 적으로 간주한다.철도가 놓이기 전 이곳의 교역은 투라강을 오가는 증기선을 이용해 이루어졌다.튜멘을 출발,투라강을 따라 북동진하면 타볼강으로 이어진 다음 타볼스크시까지 갈 수 있다.이 타볼스크시는 19세기초까지 교역중심지로서 서시베리아의 수도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1885년 에카테린부르크에서 튜멘까지 철도가 놓이면서 이 도시의 역할은 끝났다.철도건설이 도시를 죽인 또 하나의 좋은 예인 것이다.지금은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길이 1천30㎞의 투라강은 우랄에서 발원해 타볼을 거쳐 이르티시강으로 연결된다.그리고 타볼강은 카자흐스탄에서 발원해 옴스크의 이르티시강까지 1천6백㎞를 흐르는 장강이다.

새벽 6시경 시끄러운 사람의 소리에 잠을 깨 창밖을 보니 우유·스메타나·빵 등 먹을 것을 파는 상인이 열차문 밖마다 새까맣게 모여들어 있다.나지바예프스카야역이었다.<에카테린부르그=이기동·송기석 특파원>
1995-07-1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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