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생환자/“일에 몰두… 사고 잊어야”/지하 1백25m서 물만으로 16일 견뎌/“살아야 한다” 의지 다져 죽음 공포 극복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지난 67년8월22일 충남 청양 구봉광산에 매몰됐다가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양창선(65·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1리 629의 2)씨.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심리 풍원산업의 보일러공으로 일한다.삼풍백화점 붕괴소식을 듣고 서울의 막내아들(32)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했다.
『매몰된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의 생존자는 10%도 안될 것 같다』며 처음에 지하의 불을 끄려고 물을 뿌린 점을 아쉬워했다.매몰자들이 벽돌과 철근더미에 눌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물을 따라 밑으로 가라앉는 유독가스에 질식되거나 익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사고를 당한 8월이면 노곤해지며 현기증이 난다』며 구조후 얼맛동안 어둠이 두려웠고 잠이 들어도 악몽으로 가위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광산벽이 무너지며 지하 1백25m에 갇힌 그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하루 한홉가량의 물만 마시며 버텼다.어둠 속에서 천장더미에 깔려죽는다는 공포감보다 매몰 3일째부터 다가오는 배고픔과 환영이 생존의지를 약화시켰다.
막장 붕괴 때 쏟아진 돌더미가 가슴을 덮쳐 갈비뼈 두대가 서로 겹쳐진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점차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숨도 자지 못하며 몸을 주무르고 적당히 움직이며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구조당시 15㎏이나 체중이 빠진 그는 서울의 병원에서 15일간 치료받고 퇴원후 보일러공자격증을 따고 부여로 이사했다.
어묵을 만드는 지금의 풍원산업에서 일한 것은 지난 83년부터.
황해도 출생으로 양씨가 원래 성이다.1·4후퇴 때 홀로 월남해 해병대에 입대했다.당시 호적에 김씨로 잘못 올려져 바꾸려 했지만 북한 출신이라 「빨갱이」라는 오해가 무서워 고치지 못했다.사고이후 유명해져 본래 성으로 고치려 했으나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김씨 성을 그대로 쓰고 있다.
김씨는 『살아난 사람은 상당한 기간 안정을 취한 뒤 어떤 목표든지 정해 매달리는 것이 불행한 사고를 잊는 방법의 하나』라고 충고했다.<논산=이천열 기자>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지난 67년8월22일 충남 청양 구봉광산에 매몰됐다가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양창선(65·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1리 629의 2)씨.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심리 풍원산업의 보일러공으로 일한다.삼풍백화점 붕괴소식을 듣고 서울의 막내아들(32)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했다.
『매몰된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의 생존자는 10%도 안될 것 같다』며 처음에 지하의 불을 끄려고 물을 뿌린 점을 아쉬워했다.매몰자들이 벽돌과 철근더미에 눌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물을 따라 밑으로 가라앉는 유독가스에 질식되거나 익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사고를 당한 8월이면 노곤해지며 현기증이 난다』며 구조후 얼맛동안 어둠이 두려웠고 잠이 들어도 악몽으로 가위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광산벽이 무너지며 지하 1백25m에 갇힌 그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하루 한홉가량의 물만 마시며 버텼다.어둠 속에서 천장더미에 깔려죽는다는 공포감보다 매몰 3일째부터 다가오는 배고픔과 환영이 생존의지를 약화시켰다.
막장 붕괴 때 쏟아진 돌더미가 가슴을 덮쳐 갈비뼈 두대가 서로 겹쳐진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점차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숨도 자지 못하며 몸을 주무르고 적당히 움직이며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구조당시 15㎏이나 체중이 빠진 그는 서울의 병원에서 15일간 치료받고 퇴원후 보일러공자격증을 따고 부여로 이사했다.
어묵을 만드는 지금의 풍원산업에서 일한 것은 지난 83년부터.
황해도 출생으로 양씨가 원래 성이다.1·4후퇴 때 홀로 월남해 해병대에 입대했다.당시 호적에 김씨로 잘못 올려져 바꾸려 했지만 북한 출신이라 「빨갱이」라는 오해가 무서워 고치지 못했다.사고이후 유명해져 본래 성으로 고치려 했으나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김씨 성을 그대로 쓰고 있다.
김씨는 『살아난 사람은 상당한 기간 안정을 취한 뒤 어떤 목표든지 정해 매달리는 것이 불행한 사고를 잊는 방법의 하나』라고 충고했다.<논산=이천열 기자>
1995-07-0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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