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신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신문의 중요한 기능은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사회성」을 지닌 비판적인 여론의 수렴이라고 생각한다.비판적인 여론의 수렴 가운데는 「대변」이나 「대표성」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믿는다.
사실 요즘 의식있는 사람들은 신문 읽는 재미마저 없어졌다고 불만스러워 한다.왜냐하면 기사가 광고에 묻혀서 너무나 왜소해졌기 때문이다.사실 우리는 오늘 날 한국신문이 중요한 정보와 비판적인 기사를 위한 것인지,광고를 위한 것인지 혼미스러울 때가 없지않다고 생각한다.신문의 면수가 지나치게 많은 날이 되면 신문의 중요한 기사가 초점을 잃는 듯하고 신문이 잡지로 변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다.
잡지는 버리지 않지만 신문은 받아보는 시간만 지나면 버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문면수의 지나친 확대는 큰 낭비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 경쟁이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사회성」을 잃거나 윤리적인 「틀」을 벗어나면 파멸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현명한언론인 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제한된 시간안에 읽어야 할 신문의 경우 끝없는 낭비를 자초하는 터무니없는 발행부수와 무분별한 양적팽창의 경쟁보다 공기인 언론사들이 건전한 공익을 위해 합의를 본 면수를 바탕으로 해서 질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지혜롭지 않을까.
이러한 외람스러운 제안은 오늘 날 한국신문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제2의 정부」로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힘은 물론 사회적인 의무와 그 책임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간의 무게를 실을 수도 있겠다.한국신문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비록 그것이 아마추어적인 것이지만 결코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요즘 의식있는 사람들은 신문 읽는 재미마저 없어졌다고 불만스러워 한다.왜냐하면 기사가 광고에 묻혀서 너무나 왜소해졌기 때문이다.사실 우리는 오늘 날 한국신문이 중요한 정보와 비판적인 기사를 위한 것인지,광고를 위한 것인지 혼미스러울 때가 없지않다고 생각한다.신문의 면수가 지나치게 많은 날이 되면 신문의 중요한 기사가 초점을 잃는 듯하고 신문이 잡지로 변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다.
잡지는 버리지 않지만 신문은 받아보는 시간만 지나면 버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문면수의 지나친 확대는 큰 낭비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 경쟁이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사회성」을 잃거나 윤리적인 「틀」을 벗어나면 파멸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현명한언론인 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제한된 시간안에 읽어야 할 신문의 경우 끝없는 낭비를 자초하는 터무니없는 발행부수와 무분별한 양적팽창의 경쟁보다 공기인 언론사들이 건전한 공익을 위해 합의를 본 면수를 바탕으로 해서 질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지혜롭지 않을까.
이러한 외람스러운 제안은 오늘 날 한국신문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제2의 정부」로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힘은 물론 사회적인 의무와 그 책임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간의 무게를 실을 수도 있겠다.한국신문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비록 그것이 아마추어적인 것이지만 결코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1995-04-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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