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늘자 감시·통제 심해져/북 선전에 회의… 아들이 탈출 권유
귀순동기는.
▲명선씨=북한에서의 생활은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활해 온 부모들의 영향도 컸으며 남한방송을 듣고 북한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점을 알았다.북송교포라는 신분도 동기로 작용했다.
탈출을 언제 결심했나.
▲명선씨=탈출은 지난해 8월쯤으로 군생활하다 만난 친구 철만이에게 더 추워지기 전에 가자고 말했다.그러다 그해 9월5일 함경남도 금야로 출장간다며 철만이를 만나 최종결심했다.
탈출에 어려움은 없었나.
▲오씨=아들이 함경남도로 출장간다고 집을 비운뒤 한달간 나타나지 않자 안전부 보위부등에서 아들의 행방을 조사했으나 평소 내가 당에 열성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러다 아들이 탈출을 권유해 주저하지 않고 감행했다.
고향출신인 여만철씨의 탈출소식은 알고 있었나.
▲명선씨=보위부등에서 흘러나와 알았다.고향의 대부분 사람들은 여씨가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에 잘됐다는 반응이었다.그러나 그후부터 주민을 감시하는 인민반등을 통해 감시가 철저해 졌고 규율도 엄격했다.
김일성의 사망때 주민들이 정말 슬퍼했나.
▲명선씨=북한에서는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할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을 알수 없다.개인적으로는 죽었다는 말이 정말인지,거짓인지도 모르겠고 슬픈지 기쁜지도 몰랐다.다만 공장에서는 집단적으로 꽃다발을 준비해 동상앞에 찾아가 시키는대로 엎드려 절한 것으로 안다.
북한에도 세대차이가 있나.
▲철만씨=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다만 늙은이들은 일제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알고 있어 인생에 대한 회의로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었다.
탈출 소감은.
▲초미씨=땅에 떨어져도 흙이 묻지 않는다고 거짓선전에 속아 살아온 북한생활은 다시 떠올리기 싫다.탈출한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주병철 기자>
◎작년 12월29일 새벽 압록강 도착/기다리던 밀항 나타나자 “살았다”/긴장의 탈출 순간
『걸리면 마지막이다』 가난과 굶주림,「반쪽발이(재일교포출신)」라는 멸시속에서 삶을 연명하다 북을 탈출한오수룡씨 가족들은 탈출을 감행하던 순간의 긴장감을 이 한마디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29일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인 새벽 5시50분쯤 오씨 일가족 5명은 평북 신의주시 압록강변 갈대숲을 숨을 죽이며 헤쳐나갔다.
오씨 아들 명선씨는 큰딸 인화(4)를 업고 둘째 딸 수화(2)를 안은 아버지와 어머니 김초미씨를 인도했다.
명선씨는 이미 3개월전인 9월17일 친구 박철만씨와 함께 압록강을 자동차 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갔다가 부모님을 모시러 3개월여만에 죽음의 땅을 다시 넘었던 것이다.
명선씨는 북의 생활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품어오다 군대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철만씨가 같은해 9월5일 함남에서 장사차 자기 집에 들르자 탈출 결심을 털어놓았다.
철만씨는 명선씨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함남에 있는 부모와 처자식 걱정에 명선씨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하다 다음날 꿈도 희망도 없는 북한땅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명선씨는 함흥으로 출장간다는 핑계를 대고 철만씨와 함께 같은달 17일 어둠을 틈타 내의와 양복·구두를비닐봉투에 넣고 자동차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동에 이르렀다.
『중국말도 못하는데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을 것을 우려,잠도 자지않고 거닐었지요』
그후 명선씨는 하얼빈·대련등을 전전하다 친절한 조선족 사람을 만나 그 의 도움으로 생활하다 부모님을 자유의 품으로 모셔올 계획을 세웠다고 회상했다.
명선씨는 밀선을 타고 부모님이 계시는 신의주 집에 몰래 숨어들어 『고향으로 가고픈 한을 풀자』면서 부모님과 떠날 시각을 정한뒤 이웃들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서 쉬다 부모와 합류,목숨을 건 탈출길에 나선 것이다.
이때 오씨의 가족들은 산책하듯이 집을 나섰다.
막상 명선씨가 가족을 데리고 약속장소에 도착했을때 기다려야 했던 밀선은 보이지 않았다.명선씨는 강으로 뛰어들어 배를 찾았다.10분쯤 지나자 밀선이 나타났다.
『밀선이 우리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군요.그때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선씨는 방향을 틀어 오던 배를 오해한 것이었다.
명선씨 일행을 태운 배에 지옥의 땅을 뒤로하고 살을 에는듯한 추위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갔다.<박홍기 기자>
귀순동기는.
▲명선씨=북한에서의 생활은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활해 온 부모들의 영향도 컸으며 남한방송을 듣고 북한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점을 알았다.북송교포라는 신분도 동기로 작용했다.
탈출을 언제 결심했나.
▲명선씨=탈출은 지난해 8월쯤으로 군생활하다 만난 친구 철만이에게 더 추워지기 전에 가자고 말했다.그러다 그해 9월5일 함경남도 금야로 출장간다며 철만이를 만나 최종결심했다.
탈출에 어려움은 없었나.
▲오씨=아들이 함경남도로 출장간다고 집을 비운뒤 한달간 나타나지 않자 안전부 보위부등에서 아들의 행방을 조사했으나 평소 내가 당에 열성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러다 아들이 탈출을 권유해 주저하지 않고 감행했다.
고향출신인 여만철씨의 탈출소식은 알고 있었나.
▲명선씨=보위부등에서 흘러나와 알았다.고향의 대부분 사람들은 여씨가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에 잘됐다는 반응이었다.그러나 그후부터 주민을 감시하는 인민반등을 통해 감시가 철저해 졌고 규율도 엄격했다.
김일성의 사망때 주민들이 정말 슬퍼했나.
▲명선씨=북한에서는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할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을 알수 없다.개인적으로는 죽었다는 말이 정말인지,거짓인지도 모르겠고 슬픈지 기쁜지도 몰랐다.다만 공장에서는 집단적으로 꽃다발을 준비해 동상앞에 찾아가 시키는대로 엎드려 절한 것으로 안다.
북한에도 세대차이가 있나.
▲철만씨=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다만 늙은이들은 일제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알고 있어 인생에 대한 회의로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었다.
탈출 소감은.
▲초미씨=땅에 떨어져도 흙이 묻지 않는다고 거짓선전에 속아 살아온 북한생활은 다시 떠올리기 싫다.탈출한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주병철 기자>
◎작년 12월29일 새벽 압록강 도착/기다리던 밀항 나타나자 “살았다”/긴장의 탈출 순간
『걸리면 마지막이다』 가난과 굶주림,「반쪽발이(재일교포출신)」라는 멸시속에서 삶을 연명하다 북을 탈출한오수룡씨 가족들은 탈출을 감행하던 순간의 긴장감을 이 한마디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29일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인 새벽 5시50분쯤 오씨 일가족 5명은 평북 신의주시 압록강변 갈대숲을 숨을 죽이며 헤쳐나갔다.
오씨 아들 명선씨는 큰딸 인화(4)를 업고 둘째 딸 수화(2)를 안은 아버지와 어머니 김초미씨를 인도했다.
명선씨는 이미 3개월전인 9월17일 친구 박철만씨와 함께 압록강을 자동차 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갔다가 부모님을 모시러 3개월여만에 죽음의 땅을 다시 넘었던 것이다.
명선씨는 북의 생활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품어오다 군대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철만씨가 같은해 9월5일 함남에서 장사차 자기 집에 들르자 탈출 결심을 털어놓았다.
철만씨는 명선씨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함남에 있는 부모와 처자식 걱정에 명선씨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하다 다음날 꿈도 희망도 없는 북한땅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명선씨는 함흥으로 출장간다는 핑계를 대고 철만씨와 함께 같은달 17일 어둠을 틈타 내의와 양복·구두를비닐봉투에 넣고 자동차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동에 이르렀다.
『중국말도 못하는데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을 것을 우려,잠도 자지않고 거닐었지요』
그후 명선씨는 하얼빈·대련등을 전전하다 친절한 조선족 사람을 만나 그 의 도움으로 생활하다 부모님을 자유의 품으로 모셔올 계획을 세웠다고 회상했다.
명선씨는 밀선을 타고 부모님이 계시는 신의주 집에 몰래 숨어들어 『고향으로 가고픈 한을 풀자』면서 부모님과 떠날 시각을 정한뒤 이웃들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서 쉬다 부모와 합류,목숨을 건 탈출길에 나선 것이다.
이때 오씨의 가족들은 산책하듯이 집을 나섰다.
막상 명선씨가 가족을 데리고 약속장소에 도착했을때 기다려야 했던 밀선은 보이지 않았다.명선씨는 강으로 뛰어들어 배를 찾았다.10분쯤 지나자 밀선이 나타났다.
『밀선이 우리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군요.그때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선씨는 방향을 틀어 오던 배를 오해한 것이었다.
명선씨 일행을 태운 배에 지옥의 땅을 뒤로하고 살을 에는듯한 추위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갔다.<박홍기 기자>
1995-04-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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