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 없었지만 결렬 아니다” 평가/베를린 회담을 보는 정부 입장

“진전 없었지만 결렬 아니다” 평가/베를린 회담을 보는 정부 입장

유민 기자 기자
입력 1995-03-29 00:00
수정 1995-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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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도 안되면 경수로 건설 불참” 확고/“미의 「어물쩍 합의」 경계하며 북 계속 설득

정부는 이번 베를린 북·미회담에 대해 『진전이 있진 않았지만 부정적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며 다소 유보적인 평가태도를 취하고 있다.이번 회담을 「결렬」이 아니라 「일시휴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시각에는 한·미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평가는 대결분위기가 누그러져가고 있다는 대목을 말해주는 것이다.협상의 실마리는 남았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8일 『북한이 회담 중간중간에 다른 새 대안을 내놓는 흔적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북한을 설득의 장으로 끌어들일 뜻을 강하게 비췄다.

이번 회담에서 나온 북측제안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의 기업들도 경수로의 제작·시공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 부분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한국과 미국이 앞으로의 회담에 미련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 북측의 이 제안때문이다.그러나 북측은 이 제안의 전제로 『미국이 경수로공급에 있어 설계·제작·시공의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한다』는 점을 강조,여전히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의 근거로 북측은 제네바 합의는 바로 미국과 북한간에 맺어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미국은 『경수로 비용의 70∼80%를 대는 한국이 경수로 공사의 설계·제작·시공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을 회담내내 강조해왔으나 무위로 그친 셈이다.

이렇듯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지난해 10월 제네바 북·미 핵협상 합의도출과정에서 「한국형」에 대한 명확한 개념규정을 못박지 않았던 데 기인하고 있다.하지만 정부는 곧 열릴 한·미·일 고위관계자 협의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 확보없이 경수로 건설에 참여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나갈 방침이다.비용을 들인 만큼 우리의 역할과 목소리가 반영돼야한다는 확고한 원칙은 무너뜨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한편으로 정부는 고위협의과정에서 가급적 판을 깨지않으려는 클린턴행정부의 남북한 등거리 접근방식을 경계하고 있다.행여 미측이 북측의 제안을 부분수용,적당히 한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유민 기자>

◎북·미,「노형」 입장차만 확인/북,「하도급권」 노려 한국,부분참여 제시/북­미 공동발표문 만들고도 발표 안해

경수로공급 모델을 협의하기 위한 북·미 전문가회의가 조기종결된 것은 예상했던 대로지만 전문가회의를 다시 열기로 의견접근을 보고 있어 대화 창구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따라서 이번 회의가 결렬됐다고 규정짓기는 어렵다.그렇다고 진전을 이뤘다고 할 수도 없다.

한국형 경수로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이다.북한은 한국형경수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도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한국이 경수로 지원사업을 주관하고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부분 참여는 된다는 얘기다.그러나 이같은 방안을 한국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방안이 아니고서는 경수로비용을 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회의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북한의 주장으로 볼 때 북한은 한국기업에 하도급을 주는 권한을 그들이 갖고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북한진출을 바라는 한국기업 가운데 그들의 마음에 드는 기업을 선정,하도급주겠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다.

회의초기부터 정치협상이 거론돼 왔지만 양측이 전문가회의를 계속 갖기로 한 것은 북한의 요청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국은 앞으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북한이 전문가회의를 고집했다는 것이다.4월21일을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시한으로 정한 마당에 정치협상을 제의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정치협상을 개최하면 시간상 4월21일을 넘길 수 밖에 없고 시한설정이 깨진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얘기다.

양측은 회담일정과 장소를 추후 뉴욕 실무접촉을 통해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장소와 일정은 양측 전략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미 요구대로 베를린에서 열린다면 「4월21일 시한」이 임박한 4월15일 정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북한은 반면 북경을 주장하고 있고 이는 회의를 조금이라도 빨리 열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때문에 회담 장소와 일정을 두고 양측간 미묘한 신경전이 일 소지가 있다.

전문가회의가 열리더라도 한국형 경수로를 둘러싼 양측 입장차를 감안하면 「시한」내에 합의를 도출해 낼 공산은 많지 않다.결국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높고 그때 가서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관측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미대표단의 한 대변인이 『아마도 전문가회의와 같은 레벨의 회의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결렬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 것이나 북한대표부의 한 관계자가 『공동발표문은 계획되어 있지 않다.이는 회의가 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데서 볼 수 있듯 북·미 양측은 모두 회의가 결렬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그러나 공동발표문을 만들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표하지 않아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부르고 있다.<베를린=박정현 특파원>
1995-03-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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