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약이 좋아질수록 독해진다(박갑천 칼럼)

독감… 약이 좋아질수록 독해진다(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5-03-19 00:00
수정 1995-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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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걸린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요즈음 독감 안걸린 사람도 사람이냐는 농담이 오갈 정도이다.목이 붓고 온몸이 쑤시고 하여 엄살피우면서 입원하겠다는 사람까지 있다고 들린다.그래서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독감 아닌가 하면서 겁들을 집어먹는다.

앙드레 지드에게 그런 감기노이로제가 있었던 듯하다.어느 날 극장에 갔다가 으슬으슬함을 느끼자 감기걸리지 않나 지레 겁부터 먹었다.그는 그 자리에서 가지고간 아래속옷을 꺼내어 입는다.함께간 친구가 버럭 화를 냈다.『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아랫도리를 벗어? 자네하고 같이 다니다간 창피당하기 십상이겠군』.그러고서 휙 나가버렸다.

『남의 염병이 내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감기의 토박이말은 「고뿔」이다.그말은「고」와「블」로써 이루어졌다.「고」는 「코」의 옛말이고 「블」은 「불」(화)이다.중세어로 「곳블」이었음이 그를 말해준다.코가 불같아지는 증상이 「곳블­고뿔」아니었겠는가.그러나 한편 「블」은 풀(교)의 옛말 「블」이었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다.감기들면 풀같은 코가 연신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고뿔은 달리 또「개좆불」「개좆머리」라고도 했는데 오죽 짜증스러웠으면 그리 불렀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고뿔­개좆불­개좆머리」시대의 감기는「양반」이다.「입원」할 생각이 날정도의 것은 아니었잖은가.지드시대의 프랑스 고뿔도 그랬으리라.한데 그「양반」이 차츰 걸쌈스런 「상놈」으로 변질되어 온다.왜그런가.발달하는 의약 때문이다.그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다.약이 독해짐에 따라 감기바이러스 또한 감사나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하나의 난치병을 다스리면 새 난치병이 생겨나는 인류사가 그 맥락이라 할 것이다.

이솝우화가 생각난다.북풍과 해님사이에 벌인 신사의 외투벗기기 내기 얘기이다.북풍은 강한 바람으로 외투를 벗기려 한다.하지만 강하게 불면불수록 신사는 외투자락을 꽉움켜쥐고 내댄다.그런데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자 신사는 제풀에 외투를 벗는다.이런 인생의 기미를 두고「맹자」(공손축상)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힘으로써 정복한 것은 심복이 아니다.힘이 모자라므로 복종하고있다는 것 뿐이다』

힘(약)으로는 고뿔을 영원히 못없앨 것인지 모른다.힘이 강하면 엎드려있다가 힘을 기른다음 다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햇볕」이라는 처방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아닐지.인생살이를 두고도 생각해볼 대목 같기만 하다.
1995-03-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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