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열등감과 우월감(임춘웅 칼럼)

한국인의 열등감과 우월감(임춘웅 칼럼)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5-03-17 00:00
수정 1995-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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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피플」이란 시사주간지를 보다 재미있는 생활에세이 한편을 읽은 기억이 있다.서울의 모대학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러시아유학생의 수필이었는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관점이 예리했고 우리말로 쓴 글솜씨마저 인상적이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는 한국사람과 얘기를 하다보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는 칭찬이라고 한다.그런데 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으레 『한국에 언제 왔느냐』는 것이라고 했다.온 지 2년쯤 됐다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2년동안에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고 한다.그래서 한국말을 여기서 배운 게 아니고 모스크바대학의 한국학과에서 배웠다고 대답하면 또다음 질문은 『아니 모스크바대학에 한국학과가 다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이 학생의 의문은 서울의 대학에 러시아어학과가 엄연히 있는데 모스크바대학에 한국학과가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사람의 사고방식이다.그러다 얘기가 좀 길어지면 『한국학은배워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느냐』며 안타까운 눈초리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이것이 한국사람의 열등의식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사람이 왜 이런 콤플렉스를 갖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쓰고 있다.

한 조사를 보면 한국사람은 자기것에 대해 외국사람보다 5배정도 더 비판적으로 보는 것으로 돼 있다.예를 들어 교통질서 하나만 해도 한국사람은 우리와 비슷한 나라의 사람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5배나 더 심각하게 우리 실정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조사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남다른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사대사상」이니 「엽전의식」이니 하는 말들이 다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연초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미얀마 근로자들이 작업장에서 한국인의 「학대」에 항의,명동성당에 나와 집단시위를 벌인 일이 생기면서 한국인의 우월감 내지 외국인차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자기반성의 소리가 높았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란 것까지 나오고야 겨우 조용해졌다.그렇다고 문제가 된 한국인의 우월감이라고 할까,자만의 문제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시쳇말로 헷갈리게 하는 이런 한국인의 이중성의 뿌리는 결국 하나인 것이다.자기보다 나은 사람 앞에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반대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 우월감을 갖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뿌리는 같을지라도 우월감은 열등감보다 훨씬 더 유해하다.열등감은 자기를 발전시키는 유인이 될 수도 있지만 우월감은 자기를 퇴보시킬 뿐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우월감은 공격적이기 쉬워 남을 해치게 되는 결과다.
1995-03-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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