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을 속였는가”/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미국은 한국을 속였는가”/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1995-02-12 00:00
수정 1995-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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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북한 종교인 면담은 서울에서 많은 파장을 낳고 있다.미국의 변명이야 어떻든 이는 한국국민의 미국정부에 대한 신뢰성에 찬물을 끼얹었다.외교관행을 깬 클린턴 행정부의 「은밀한 처사」는 해방 후 좌우익 투쟁의 와중에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던 『미국사람 믿지 말고 소련사람 속지 말자』던 구호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미국은 과연 한국을 속였는가.클린턴 대통령은 정말로 한국정부 몰래 북한 종교인 면담을 결행하려 했던 것인가.흥분에 앞서 사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2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북한대표단장 장재철을 기도회장 별실에서 다른 32명의 인사와 함께 면담했으면서도 이를 부인하다가 북한의 방송이 있고서야 뒤늦게 시인했다는 점이다.

기도회 다음날인 3일 일부 북한종교인들이 백악관 관광을 갔던 사실이 「백악관 면담」으로 와전된 것을 계기로 한국은 외교경로를 통해 혹시 「만남」이 없었는지 문의했으나 『기도회장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별도의 예방은 없었다』는 답변을 국무부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북한 중앙방송이 7일(한국시간)방미중인 장재철이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했다고 보도한 뒤에는 부랴부랴 『기도회장 옆방에서 33명의 기도회 참석자들이 클린턴 대통령과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며 이를 시인했다.

미국은 『(미국과 북한의)막후접촉의 성격은 결코 아니며 지극히 의례적인 것』이라고 비공식 해명을 통해 강조했다.클린턴 대통령이 잠시 인사를 나눈 33인은 이집트,서부사하라,피지,도미니카등 6개국의 국가수반및 총리급 인사와 미국의 교계,지역별 대표,그리고 북한등 주요 선교대상 지역 대표들이었으며 이들의 선정과 면담주선은 이 기도회를 주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별도 면담」의 행사는 백악관 의전팀이 도맡았으며 이 33명 일괄면담이 외교적 의미가 없다고 보았는지 외교쪽을 관장하는 안보보좌관실에는 사전협조를 구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국무부쪽에는 별도 행사가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별도면담」행사가 백악관내 부서간및 백악관과 국무부간의 협조 부족으로 한국에 사전통보되지 못했고 확인도 제대로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비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미수교국인 북한대표를 만나는 「상징성」을 백악관의 관계자들이 과연 도외시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최근 북한 경수로 공급협정 문안을 한미간에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그들이 기안한 초안을 한국측에 제시했는데 북한은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고 정식국호를 썼으면서도 한국은 「The Republic of Korea」대신에 「South Korea」로만 표기했었다.한국이 이를 지적하자 그들도 『이럴 수가…』하면서 실소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우방이니 동맹이니 하면서 한 식구처럼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아무렇게나 대하고 적당히 건너뛰어도 양해가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미국은 남북한의 정서를 너무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미국은 이번 「면담 해프닝」이 앞으로도 고비가 많이 남은 북미 합의사항의 이행과 미북한 관계 개선 과정에서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995-02-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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