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다루는 방법/황병선 정치2부장(데스크 시각)

북한을 다루는 방법/황병선 정치2부장(데스크 시각)

황병선 기자 기자
입력 1994-12-31 00:00
수정 199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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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헬기사건은 30일 생존 조종사가 귀환함으로써 13일만에 일단락 됐다.북에 억류돼 있던 보비 홀 준위가 고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조종사의 귀환이 밝은 뉴스임에 틀림없으나 진행돼온 송환교섭과 그 결과는 한국민에게 여러가지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솔직히 앞으로 미­북 관계가 정상화 됐을 때 남·북한과 미국의 3각관계가 어떻게 전개돼 나갈지 걱정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헬기사건이 핵타결로 북­미간 대화가 공식·본격화하고 있는 국면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 수습과정과 결과는 한국민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일수 밖에 없었다.특히 미­북간 핵협상이 한국측 입장을 충분히 반영치 않은 가운데 서둘러 타결됐다는 불만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있는 실정이어서 한국민의 시선은 날카로울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헬기사건에 임하는 미국의 모습은 처음부터 무척 저자세인 데다 매우 허둥댄다는 인상을 주었다.물론 실수를 저질러 헬기가 북한 영공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는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볼수 있다.그러나 방북중인 하원의원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송환교섭을 벌이는 양태에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쉽사리 잘못을 사과하는 서한을 보내는 모습등 침착한 대응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끝내는 이제까지 방북했던 미국관리중 가장 고위급인 부차관보가 평양으로 달려가 쩔쩔매다 남북방향조차 제대로 가늠할줄 모르는 조종사 한명을 데리고 돌아온 결과가 됐다.

미­북간 합의사항 이행을 놓고 아쉬운 것이 어느 쪽인가.인도적 차원에서 억류중인 조종사를 하루라도 빨리 송환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다.그러나 보다 큰 국익을 생각한다면 냉정한 자세로 비무장의 헬기가 연습비행중 항로를 이탈한 상황인데 충분한 경고조치없이 격추시켜 1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잔인성을 먼저 지적한뒤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더라면 당당한 송환이 가능했을 것이다.

70년대 카터행정부 때 주한미군철수 문제,남·북한과 미국간 3자회담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두드러 졌듯 한반도,특히 북한문제를 다루는 민주당 행정부의 모습은어딘지 어색하고 순진해보여 마음을 놓기 힘든 경우가 적지않다.인권문제 중시등 인도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그들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때문인지 극단적 비인도·권위주의정권과 마주치면 따끔하게 제대로 요리를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30일 홀 준위의 송환과 함께 워싱턴과 평양에서 공개된 일부 대목에 차이가 나는 두갈래의 「미­북 양해문」을 보면서 우리의 우려가 단지 기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미국이 「진정한 유감」이라고 표현하고 북한은 이를 「진심의 사죄」라고 하는 정도의 차이는 이해할만한 일이라고 접어두자.

그러나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북­미간에 『한반도의 평화과 안전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막기 위해 판문점에서 군부접촉을 계속한다』『남조선에 남아있는 전쟁포로인 비전향장기수들이 빨리 송환되도록 필요한 배려를 하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을 합의사항이라고 밝히자 상황은 복잡해졌다.

미측은 이번에 조종사송환을 위해 판문점에서 있었던 미­북장성회담 정도의 접촉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충분한 해명이 되지 못한다.북한이 자신들을 침략자로 규정한 유엔과 체결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결국 북한은 「양해문」을 통해 남측을 배제한 평화협정에로 한걸음 진전했다고 자평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비전향장기수문제를,그것도 한국이 배제된 자리에서 조종사 송환문제와 결부시켜 거론했다면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어불성설이 아닐수 없다.

한­미 양측은 차제에 이같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을 포함,북­미핵타결이후 누적돼온 오해의 소지를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또 남북한과 미국 3자관계에 있어 북한의 이간책이 먹혀 들거나 한­미간 오해로 뜻밖의 심각한 상황,「불편한 관계」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경각심도 공유해야 할것 같다.

다만 한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다루는데 있어 오랜경험과 노하우로 한국이 「한수위」임을 인정받아 한반도문제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1994-12-3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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