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문안과 우리말/김창화 연극 평론가(굄돌)

광고문안과 우리말/김창화 연극 평론가(굄돌)

김창화 기자 기자
입력 1994-12-24 00:00
수정 1994-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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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구석구석을 지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우선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이다.우리말과 외국어의 심각한 뒤섞임이 거리를 채우고 있으며 알 수 없는 내용 때문에 머리가 아파진다.광고란 미처 모르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것일텐데 광고 자체가 어렵다.

우리말의 으뜸꼴이 도대체 무엇인지 깨치기도 전에 아이들은 세계의 언어와 시대의 언어에 휩싸여 자란다.왜 우리말이 이렇게 뒷전에 밀려앉게 되었을까.우리말로 광고를 하면 제품의 질에 대한 보장이 불가능해서? 말도 안되는 표현에 사람들은 이미 길들여져 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탈리아 사람은 소설을 쓰기 전에 언어학에 대한 공부를 했다.특히 언어의 동시대적 쓰임새를 기호학으로 풀어보기 위해 북부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에 등장한 외국어로 쓰여진 간판과 방송매체에 등장하는 광고문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중세의 암흑기에 교회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예배를 드렸고 성직자들과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타틴어는 유일한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에코는 교회의 기록을 면밀하게 검증해본 뒤 역사 조작의 흔적을 찾아냈고,자신의 역구결과를 소설의 형태로 대중화한 것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 믿고 쌓아올린 탑이 바벨탑이며,하늘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베벨탑이 무너진 뒤 인간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이때부터 인간들에겐 오직 혼돈과 무질서만 남게 됐다고 한다.

서울의 거리에 등장한 다국적 문화집중 현상은 우리의 확신과 능력을 파괴하는 혼돈이며 세계를 향한 우리의 꿈을 가두어 버리는 조작된 기호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움베르토 에코가 방송과 광고의 문안들이 중세의 라틴어처럼 우리들의 건강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상징기호일 뿐이며 조작된 문자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처럼.
1994-12-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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