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읽히기 확산을 보며(박갑천 칼럼)

「명심보감」 읽히기 확산을 보며(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4-12-14 00:00
수정 199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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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서 토론의 대상으로된 문제가 있다.­『당신은 당신의 자식에게 어떠한 경우에 처하건 정직하고 올바르게 양심과 양식에 따라서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수 있겠습니까』

한세대 전의 어버이들이라면 이게 토론의 대상으로 된다는 것부터 우습다.당연히 그리 가르쳐야지 무슨 얼빠진 소리인가.한강 모래톱에 혀를 박고 죽으라 할지언정 세상 부모치고 자식에게 양심 기이며 살랄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어버이들 생각이 반드시 옛날 어버이들 생각 같을수는 없다.설사 양심에 기이는바 있더라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정직이 세상 사는 방법으로 항상 옳은건 아니다,선과 악이란 사실은 구별하기 어려운 법이다…등등 달라지게 되어있다.『친절한 사람이라고 다 좋은건 아니다』고 어린 자녀에게 불신을 가르쳐야 하게 되어있는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사물이 생겨나 변화하는 것이 마치 말이 달리듯이 빠르다오.움직여서 변화하지 않는게 없고 시간에 따라 변동되지 않는게 없소.…』북해의신 약의 입을 빌려서 하는 「장자」(추수편)의말이다.「말이 달리듯」빨리 변한다고 함은 영겁의 우주영위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렇다.세상은 변한다.변하는 세상 따라 가치의 기준도 변한다.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는 있는 법이다.플라톤이 말했던바 이데아 같은거다.『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되 달은 손가락에 있지 아니하고 말로써 진리를 말하되 진리는 말에 있지 아니하다』(보조국사법어)고 했던 그 진리 말이다.그러므로 전도된 가치관의 현실 속에서 선이나 정직이 굴절돼 보인다 하여 그 모습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역시 선이나 친절은 인간이 어느 시대라 할것 없이 추구해야 하는 아름다운 덕목 아니겠는가.

참다운 진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고 올바르다.「명심보감」은 그런 값진 진리를 담고 있는 도덕교양서이다.그래서 시대가 흘러도 주옥같은 글귀의 좌우명들은 오히려 빛을 뿜는다.물론 퇴색해버린 내용이 없는건 아니다.하지만 그 또한 오늘에 이르게된 정신사의 가닥으로서 새겨 받아들이면 된다.무엇보다도 「명심보감」은 자식에게 바르게 살라고 할수 있는 어버이로서의 자세를 가르친다는 뜻이 깊다.



대학에서 혹은 기업체에서 「명심보감」읽히기 운동이 벌어진데 이어 육군에서도 사병들 인성교육용으로 이를 배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좋은 흐름임에 틀림이 없다.다만 그 정신이 얼마나 오롯이 스며들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전도된 가치관에 너무들 깊이 중독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1994-12-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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