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팀과 함께 뛰는 YS(청와대)

월드컵팀과 함께 뛰는 YS(청와대)

김영만 기자 기자
입력 1994-06-25 00:00
수정 199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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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가 정상회담을 연기시켰다.국제관례에 비추어 보기드문 일이다.

24일 상오 10시30분으로 잡혔던 한국과 태국의 정상회담은 10시50분에야 열렸다.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의 개최시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체로 상오 10시가 관례.그러나 우리쪽은 이날 상오 8시30분에 시작된 월드컵축구 한국과 볼리비아의 대전시간을 감안,관례보다 30분 늦은 10시30분을 회담시간으로 잡았었다.그런데 이날 상오10시쯤 태국의 의전관계자가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왔다.10시30분까지도 축구가 다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월드컵축구에 대한 한국국민의 뜨거운 애정과 김영삼대통령의 깊은 관심을 고려해 『축구가 끝난 뒤에 가겠다』는 제의였다.결국 축구 때문에 정상회담이 50분이나 늦춰진 것이다.

축구에 대한 김대통령의 열정은 남다르게 느껴진다.김대통령이 이날 추안태국총리와 만나 처음 나눈 말 또한 축구였다.『축구 때문에 정상회담을 늦췄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면서 웃었다.추안총리도 『호텔에서 한국과 볼리비아의 대전을 흥미있게 보았다』면서 『한국팀을 많이 응원했다.아시아를 대표해 한국팀이 좋은 경기상황을 보여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답했다.김대통령이 추안총리의 말을 그냥 지나칠리 없다.대통령의 실제상황을 넘는 것 같은 한국팀 자랑이 이어졌다.『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이길 기회가 훨씬 많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아쉬웠다.하지만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우리가 스페인하고 비겼는데 스페인은 독일하고 비겼다.독일하고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이 짧은 축구이야기에는 김대통령의 여러가지 성격들이 잘 드러나 있다.눈 딱 감고 할말이나 자랑을 하는 성격이 그 가운데 하나다.우리가 훨씬 이길 기회가 많았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파악하는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성격도 읽을 수 있다.독일이 스페인과 비겼다는 이유만으로 해볼만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정상회담에서 꺼리낌없이 밝히고 있다.독일이 볼리비아를 1대0으로 꺾었다는 점은 인용하지 않는다.대통령은 늘 이런식으로 상황을 장악해 간다.

그러나 이런 성격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축구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과 관심이다.축구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알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청와대비서실이나 심지어 부속실도 월드컵축구경기만은 TV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시청한다.같은 시간 대통령도 그러고 있으니까 꾸중을 들을 염려가 없다.

대통령은 이날도 꼬박 TV 앞에 앉아 한국과 볼리비아의 경기를 지켜봤다.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때로는 벌떡 일어나 환호하기를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중고교시절 축구선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그는 측근들과 술자리라도 갖게 되면 『내가 치고 나가몬(나가면)부산고 쪽에서 「아무개 쥑이라(죽여라)」하는 아우성이 터지곤 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경남고 때 라이벌 부산고와의 경기를 들어 축구실력을 은근히 뽐내는 것이다.이런 때는 눈이 지그시 감긴다.

김대통령의 학창시절 포지션은 센터포워드.한국과 볼리비아전에서 황선홍이 선 자리다.전국의 TV시청자들은 이날따라 황선홍에게 공이 자주 간다고 느꼈다.

그리고 김대통령은스스로를 황선홍의 자리에 대입시켜 놓고 무승부를 아쉬워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김호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아쉽기는 했지만 선전했다.선수들의 최선을 다한 눈물겨운 분투에 격려를 보낸다.남은 경기에 더욱 분발해서 승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독일과의 경기도 해볼만하다고 믿는 눈치다.<김영만기자>
1994-06-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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