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공존」 실현… 원주민들에 새 희망
『우리는 드디어 해방입니다』남아공의 첫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총선 승리 제1성으로 이같이 소리높여 외쳤다.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이 말속에는 3백42년에 걸친 백인통치를 종식시키겠다는 흑인들의 비원을 이루어냈다는 감회외에 앞으로도 지구상 곳곳에서 억압받는 흑인들과 뜻을 같이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27년간의 감옥생활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범 가운데 하나였던 만델라는 유일한 인종차별국 남아공에서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키고 원주민인 흑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겠다는 일념으로 외길인생을 걸어온 투사이다.
『내 피를 자유의 나무에 쏟아부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내가 걸었던 것 같은 삶의 역경을 거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유쾌하게 그 일을 할 것』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만델라는 체제에 대한 도전과 그에 따른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현재 독재통치및 백인에 대한 보복을 우려하는일부에 대해 『소수세력을 억압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권력배분을 합리적으로 할 것』이라고 역설,평화 분위기조성에 힘씀으로써 모든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민주·자유사회 건설에 대한 자신의 변론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1918년7월18일 케이프타운의 동부 트란스키에서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포트헤어대와 위트워터스랜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텔리출신이다.그러나 그는 어릴때부터 백인들이 이땅에 오기전 평화롭게 살았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자랐고 이는 자신이 정치적 투쟁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켜 주었다고 지난 62년 재판에서도 진술한 바 있다.
지난 48년 국민당이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인종차별을 공식적인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결정하여 관련법을 제정하자 만델라는 동료 올리버 탐보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청년동맹을 조직,투쟁을 주도해 나갔다.이어 50년대에는 흑인들에게 금지돼있던 「백인을 위한 출입구」「유럽인만을 위한 플랫폼」 등을 일부러 이용하여 거의 1만명에 가까운 흑인들이 스스로 감옥을 찾아가는 불복종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55년 ANC가「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인과 백인 모두의 것」이라는 혁명적(?) 문구를 담은 자유헌장을 채택하자 정부는 만델라등 1백57명에 내란음모죄를 적용시키고 모든 시위를 금지시키는 혹독한 안전법을 제정,경찰이 무고한 흑인들을 집단구타하는등 무력에 따른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비폭력저항운동의 원칙에 근거했던 만델라도 이때부터 「움콘토 위 스츠베」(국민의 창)라는 ANC군대를 결성,무장투쟁으로 맞서게 됐다.
62년 파업주도와 무력을 통한 국가전복기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만델라는 수감중에도 끊임없는 자기수련과 다른 정치범들에 대한 의식교육으로 교도소가 있던 로벤섬을 「만델라대학교」라 불리게 만들기도 했다.
90년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의 5년내 단계적 철폐를 약속한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자유의 몸이 된 만델라는 이후 계속적인 협상으로 남아공의 전인종선거 실시라는 대타협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데 클레르크와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건설의 주역이 된 만델라.남아공의 미래는 그의 이러한 능력발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정아기자>
『우리는 드디어 해방입니다』남아공의 첫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총선 승리 제1성으로 이같이 소리높여 외쳤다.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이 말속에는 3백42년에 걸친 백인통치를 종식시키겠다는 흑인들의 비원을 이루어냈다는 감회외에 앞으로도 지구상 곳곳에서 억압받는 흑인들과 뜻을 같이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27년간의 감옥생활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범 가운데 하나였던 만델라는 유일한 인종차별국 남아공에서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키고 원주민인 흑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겠다는 일념으로 외길인생을 걸어온 투사이다.
『내 피를 자유의 나무에 쏟아부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내가 걸었던 것 같은 삶의 역경을 거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유쾌하게 그 일을 할 것』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만델라는 체제에 대한 도전과 그에 따른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현재 독재통치및 백인에 대한 보복을 우려하는일부에 대해 『소수세력을 억압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권력배분을 합리적으로 할 것』이라고 역설,평화 분위기조성에 힘씀으로써 모든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민주·자유사회 건설에 대한 자신의 변론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1918년7월18일 케이프타운의 동부 트란스키에서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포트헤어대와 위트워터스랜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텔리출신이다.그러나 그는 어릴때부터 백인들이 이땅에 오기전 평화롭게 살았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자랐고 이는 자신이 정치적 투쟁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켜 주었다고 지난 62년 재판에서도 진술한 바 있다.
지난 48년 국민당이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인종차별을 공식적인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결정하여 관련법을 제정하자 만델라는 동료 올리버 탐보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청년동맹을 조직,투쟁을 주도해 나갔다.이어 50년대에는 흑인들에게 금지돼있던 「백인을 위한 출입구」「유럽인만을 위한 플랫폼」 등을 일부러 이용하여 거의 1만명에 가까운 흑인들이 스스로 감옥을 찾아가는 불복종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55년 ANC가「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인과 백인 모두의 것」이라는 혁명적(?) 문구를 담은 자유헌장을 채택하자 정부는 만델라등 1백57명에 내란음모죄를 적용시키고 모든 시위를 금지시키는 혹독한 안전법을 제정,경찰이 무고한 흑인들을 집단구타하는등 무력에 따른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비폭력저항운동의 원칙에 근거했던 만델라도 이때부터 「움콘토 위 스츠베」(국민의 창)라는 ANC군대를 결성,무장투쟁으로 맞서게 됐다.
62년 파업주도와 무력을 통한 국가전복기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만델라는 수감중에도 끊임없는 자기수련과 다른 정치범들에 대한 의식교육으로 교도소가 있던 로벤섬을 「만델라대학교」라 불리게 만들기도 했다.
90년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의 5년내 단계적 철폐를 약속한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자유의 몸이 된 만델라는 이후 계속적인 협상으로 남아공의 전인종선거 실시라는 대타협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데 클레르크와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건설의 주역이 된 만델라.남아공의 미래는 그의 이러한 능력발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정아기자>
1994-05-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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