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중 한사람인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무명작가시절 캘리포니아의 해변도시 퍼시픽 그로브에서 살았다.그가 살던 집은 침실 한개짜리 오두막으로 바닷가 돌을 주워다 손수 지은 것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산 기간은 몇년에 불과했으나 스타인벡이 죽기도 전에 그의 문학애호가에게 팔려 「스타인벡의 오두막」으로 명명됐다.「스타인벡의 오두막」 주인은 스타인벡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당국과 스탠더드 오일 및 아메리카은행의 지원을 받아 3층짜리 스타인벡기념관까지 마련했다.
스타인벡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우리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전집에는 「…어부의 겁인가」란 독해불가능한 대목이 있었다.어떤 연구자는 이 구절을 「…어부의 업보인가」로 해석하기도 했다.그러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초고를 확인한 다른 부지런한 연구자에 의해 「어부의 집인가」로 정정됐다.청마기념관을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지 못하다.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의 생가는 물론 그가 묵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작가의 육필원고를 비롯,생전에 쓰던 온갖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그곳은 문학연구의 산실이 되기도 하고 책속에 갇힌 문학사를 생생히 재현하는 문학관광의 명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인들의 생가는 보존된 경우가 드물며 육필원고도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있다.육필원고가 남은 청마의 경우는 오히려 다행한 편에 속한다.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명문학작품과 문인의 유품을 보관·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 빠르면 오는 11월 문을 열리라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서대문구청이 옛 서울여상 팔각정건물을 개수하여 황순구교수(동국대)와 문인협회 제공자료를 전시한다니 실현가능성이 높을 듯싶다.문학박물간 건립은 지난 70년대부터 논의돼온 우리문단의 꿈이다.
그가 이곳에서 산 기간은 몇년에 불과했으나 스타인벡이 죽기도 전에 그의 문학애호가에게 팔려 「스타인벡의 오두막」으로 명명됐다.「스타인벡의 오두막」 주인은 스타인벡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당국과 스탠더드 오일 및 아메리카은행의 지원을 받아 3층짜리 스타인벡기념관까지 마련했다.
스타인벡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우리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전집에는 「…어부의 겁인가」란 독해불가능한 대목이 있었다.어떤 연구자는 이 구절을 「…어부의 업보인가」로 해석하기도 했다.그러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초고를 확인한 다른 부지런한 연구자에 의해 「어부의 집인가」로 정정됐다.청마기념관을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지 못하다.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의 생가는 물론 그가 묵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작가의 육필원고를 비롯,생전에 쓰던 온갖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그곳은 문학연구의 산실이 되기도 하고 책속에 갇힌 문학사를 생생히 재현하는 문학관광의 명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인들의 생가는 보존된 경우가 드물며 육필원고도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있다.육필원고가 남은 청마의 경우는 오히려 다행한 편에 속한다.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명문학작품과 문인의 유품을 보관·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 빠르면 오는 11월 문을 열리라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서대문구청이 옛 서울여상 팔각정건물을 개수하여 황순구교수(동국대)와 문인협회 제공자료를 전시한다니 실현가능성이 높을 듯싶다.문학박물간 건립은 지난 70년대부터 논의돼온 우리문단의 꿈이다.
1994-04-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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