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말을 낳고,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낳게 마련이다.그런 의미에서 생활정치라는 새로운 말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기쁜 일이라고 하겠다.
생활정치란 피부에 와닿는 행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정치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고 그것을 국민이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민정부이후 달라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무엇보다도 체감적으로 사회적인 공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말할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구태의연하다고 할까,변혁이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와닿기에는 멀었다고 개탄해야 할 일이 역시 한두가지가 아니다.생활정치란 국민생활에 대한 세심한 배려없이는 이루어어질수 없다.몇가지 예를 들면서 한 시민으로서 생활정치에 대한 제언을 해볼까 한다.
나는 그동안 몇번인가 「신원진술서」라는 것을 써야만 했다.어떤 사사로운 기관의 이사와 같은 명예직을 얻는데도 이런 서류를 제출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거기에다가는 「친권자 재산」이니 「정당및 사회단체 활동관계」니 하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데 「가족사항」이라는데 이르면 「처가」에 대해서까지 기록해야하며 「북한및 재외거주 가족」 「교우」 「보증인」등의 난마저 메워야 한다.왜 이런 프라이버시에 관한 정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같은 기록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이처럼 국민을 관리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그러나 그런 번거로움이 문민정부하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거기다가 이 서류는 반드시 「자필로」다섯통이나 써야한다는 것이다.복사기가 보편화돼 있는 요즘에도 말이다.한통만 쓰면 나머지는 복사한다든지 복사한 것을 대조해 본다든지 하는 것이 관청이 할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낭비와 번거로움이 행정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생활정치를 외쳐야한다.국민의 불편을 덜어주고 낭비를 제거하자는 것이다.
한두가지만 더 얘기해 보고 싶다.
하나는 지하철에 관한 것이다.서울 지하철의 안내표지는 그다지 친절한 것이 못된다.홈에 내리면 어느쪽으로 가야 중요건물을 찾아나갈지알수 있는 표지판이 여러군데 있어야 한다.갈아타는 표지도 혼란스럽다.중요건물 표지가 겨우 나가는 계단가까이 가서야 불쑥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지방에서 올라와서 처음 서울을 찾는 사람이 쉽사리 찾아나갈 수 있도록 모든 표지가 전면적으로 검토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활정치란 국민심리에 대한 예리하고도 따뜻한 배려위에서만 가능하다.가령 지하철이나 버스 요금을 인상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우선 인상할 수밖에 없는 자세한 근거를 제시해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그리고 요금인상과 더불어 서비스개선을 약속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5분간격으로 오던 전철이 4분간격으로 온다든가.때때로 붐비지 않는 차량에 몸담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그렇게 해준다면 정말로 국민은 발전하는 행정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행정이 국민의 동의나 이해를 얻는데 너무나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지난 여름 어떤 유원지에서 경험한 일이다.문을 닫을 하오5시 가까이 됐을 무렵이었다.들어갈 때는 각각 시간을 달리하여 들어가도 나올 때는 모두가 일제히 몰려든다.아우성치는 아수라장이었다.버스를 탈 도리가 없었다.
이런 불편을 감안해 시간을 맞추어 버스를 특별배차해서 전철역까지 왕복하면서 승객을 나르게 할수는 없는 것인지.젊은 사람들은 전철역까지 먼 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나이든 사람들은 찌푸린 얼굴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이때문에 모두 자가용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차가 붐비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정치란 작은 일에까지 섬세한 배려를 하자는 것이다.그것은 관리들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는 창의를 요구한다.그러니까 그들이 「복지불동」해서는 안된다.어떻게 하면 그들 사이에 강력한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활정치를 위한 마음씨나 자세가 일어날수 있을 것인가.이것이야말로 문민정치 1년이 지난 오늘의 중요정치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생활정치란 피부에 와닿는 행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정치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고 그것을 국민이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민정부이후 달라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무엇보다도 체감적으로 사회적인 공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말할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구태의연하다고 할까,변혁이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와닿기에는 멀었다고 개탄해야 할 일이 역시 한두가지가 아니다.생활정치란 국민생활에 대한 세심한 배려없이는 이루어어질수 없다.몇가지 예를 들면서 한 시민으로서 생활정치에 대한 제언을 해볼까 한다.
나는 그동안 몇번인가 「신원진술서」라는 것을 써야만 했다.어떤 사사로운 기관의 이사와 같은 명예직을 얻는데도 이런 서류를 제출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거기에다가는 「친권자 재산」이니 「정당및 사회단체 활동관계」니 하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데 「가족사항」이라는데 이르면 「처가」에 대해서까지 기록해야하며 「북한및 재외거주 가족」 「교우」 「보증인」등의 난마저 메워야 한다.왜 이런 프라이버시에 관한 정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같은 기록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이처럼 국민을 관리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그러나 그런 번거로움이 문민정부하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거기다가 이 서류는 반드시 「자필로」다섯통이나 써야한다는 것이다.복사기가 보편화돼 있는 요즘에도 말이다.한통만 쓰면 나머지는 복사한다든지 복사한 것을 대조해 본다든지 하는 것이 관청이 할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낭비와 번거로움이 행정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생활정치를 외쳐야한다.국민의 불편을 덜어주고 낭비를 제거하자는 것이다.
한두가지만 더 얘기해 보고 싶다.
하나는 지하철에 관한 것이다.서울 지하철의 안내표지는 그다지 친절한 것이 못된다.홈에 내리면 어느쪽으로 가야 중요건물을 찾아나갈지알수 있는 표지판이 여러군데 있어야 한다.갈아타는 표지도 혼란스럽다.중요건물 표지가 겨우 나가는 계단가까이 가서야 불쑥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지방에서 올라와서 처음 서울을 찾는 사람이 쉽사리 찾아나갈 수 있도록 모든 표지가 전면적으로 검토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활정치란 국민심리에 대한 예리하고도 따뜻한 배려위에서만 가능하다.가령 지하철이나 버스 요금을 인상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우선 인상할 수밖에 없는 자세한 근거를 제시해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그리고 요금인상과 더불어 서비스개선을 약속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5분간격으로 오던 전철이 4분간격으로 온다든가.때때로 붐비지 않는 차량에 몸담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그렇게 해준다면 정말로 국민은 발전하는 행정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행정이 국민의 동의나 이해를 얻는데 너무나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지난 여름 어떤 유원지에서 경험한 일이다.문을 닫을 하오5시 가까이 됐을 무렵이었다.들어갈 때는 각각 시간을 달리하여 들어가도 나올 때는 모두가 일제히 몰려든다.아우성치는 아수라장이었다.버스를 탈 도리가 없었다.
이런 불편을 감안해 시간을 맞추어 버스를 특별배차해서 전철역까지 왕복하면서 승객을 나르게 할수는 없는 것인지.젊은 사람들은 전철역까지 먼 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나이든 사람들은 찌푸린 얼굴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이때문에 모두 자가용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차가 붐비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정치란 작은 일에까지 섬세한 배려를 하자는 것이다.그것은 관리들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는 창의를 요구한다.그러니까 그들이 「복지불동」해서는 안된다.어떻게 하면 그들 사이에 강력한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활정치를 위한 마음씨나 자세가 일어날수 있을 것인가.이것이야말로 문민정치 1년이 지난 오늘의 중요정치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1994-03-0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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