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능산리 백제유물박물관 지휘 책임자/“능산리 향로는 분명 백제 것”/전체적 조형·용·연꽃모양 중국과 큰 차이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3일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일수도 있다」는 일부의 문제제기에 대해 『백제미술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산하 부여박물관이 맡고 있는 능산리 백제유물 발굴작업의 지휘 책임자이자 지도위원이기도 한 정관장은 『우선 전형부터가 중국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향로는 전국시대말에서 한대와 육조시대를 거쳐 원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현재 중앙박물관에는 중국 향로의 원형을 보여주는 원대 도자 박산로가 있어요.신안앞바다에서 건진 겁니다.능산리것은 준수한데 반해 중국것은 펑퍼짐하고 안정감이 있습니다.산의 배치등 비례부터가 분명히 다릅니다』
정관장은 『전체적인 조형외에도 대략적으로 살펴봐도 용이나 인물들이 중국것은 권위적인데 비해 능산리것은 사실적이고 간결하게 표현되는등 백제적인 특성이 명확히 나타난다』고 밝혔다.
『몸체부분의 연꽃판도 우리 양식입니다.중국향로의 연꽃은 끝이 뾰족하고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것은 우아합니다.특히 맨아래 연꽃판에 양각의 문양대신 음각선을 두른것은 백제특유의 기법입니다.또 다리부분(대족부)의 용은 이것이 한국용이지 중국용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얘깁니다.또 뚜껑부분에 나타난 새나 산,바위는 부여 규암외리에서 나온 산경문전의 그것이며 산 밑의 화염문도 부여에서 나온 금동제품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관장은 「이처럼 화려한 백제유물이 출토된 예가 지금까지 없지않느냐」는 일부의 「전래가능성」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백제문화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경우는 조금 예외지만 금동향로류의 귀중한 유물은 무덤아니면 나올 곳이 없습니다.그런데 백제무덤은 횡혈식으로 도굴꾼들이 마음대로 출입할수 있어요.일제시대 일인도굴꾼들이 다 훔쳐 갔습니다.좋은 유물이 남아있을리가 없지요.이런상황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예요.벽화밖에는 남은것이 없지 않습니까.신라도 도굴이 가능한 묘제로 바뀐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정관장은 『훌륭한 유물이 출토된 것도 경사스런 일이지만 이번 발굴로 백제문화에 대해 재인식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 더욱 의미있다』고 기쁨을 표시했다.<철>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3일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일수도 있다」는 일부의 문제제기에 대해 『백제미술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산하 부여박물관이 맡고 있는 능산리 백제유물 발굴작업의 지휘 책임자이자 지도위원이기도 한 정관장은 『우선 전형부터가 중국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향로는 전국시대말에서 한대와 육조시대를 거쳐 원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현재 중앙박물관에는 중국 향로의 원형을 보여주는 원대 도자 박산로가 있어요.신안앞바다에서 건진 겁니다.능산리것은 준수한데 반해 중국것은 펑퍼짐하고 안정감이 있습니다.산의 배치등 비례부터가 분명히 다릅니다』
정관장은 『전체적인 조형외에도 대략적으로 살펴봐도 용이나 인물들이 중국것은 권위적인데 비해 능산리것은 사실적이고 간결하게 표현되는등 백제적인 특성이 명확히 나타난다』고 밝혔다.
『몸체부분의 연꽃판도 우리 양식입니다.중국향로의 연꽃은 끝이 뾰족하고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것은 우아합니다.특히 맨아래 연꽃판에 양각의 문양대신 음각선을 두른것은 백제특유의 기법입니다.또 다리부분(대족부)의 용은 이것이 한국용이지 중국용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얘깁니다.또 뚜껑부분에 나타난 새나 산,바위는 부여 규암외리에서 나온 산경문전의 그것이며 산 밑의 화염문도 부여에서 나온 금동제품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관장은 「이처럼 화려한 백제유물이 출토된 예가 지금까지 없지않느냐」는 일부의 「전래가능성」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백제문화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경우는 조금 예외지만 금동향로류의 귀중한 유물은 무덤아니면 나올 곳이 없습니다.그런데 백제무덤은 횡혈식으로 도굴꾼들이 마음대로 출입할수 있어요.일제시대 일인도굴꾼들이 다 훔쳐 갔습니다.좋은 유물이 남아있을리가 없지요.이런상황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예요.벽화밖에는 남은것이 없지 않습니까.신라도 도굴이 가능한 묘제로 바뀐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정관장은 『훌륭한 유물이 출토된 것도 경사스런 일이지만 이번 발굴로 백제문화에 대해 재인식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 더욱 의미있다』고 기쁨을 표시했다.<철>
1993-12-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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