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위를 살펴보면 유리로된 공간에서 유리로된 생활용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물컵,차잔,식기에 이르기까지 사기나 도자기류가 유리로 바뀌고 건축공간도 대형 유리창이나 유리문을 통해 외부와의 차단을 배제하고 있다.오늘날 사람들은 이처럼 투명성에 대한 대단한 선호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찍이 19세기 중엽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장인 「수정궁」의 위용에서 유리와 철에 의한 경이로운 새 건축미학을 경험한바 있다.20세기초 건축가들의 소위 「글라스 커튼」이라는 유리벽의 도입에서는 과거의 기둥과 벽의 기능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사실을 상기할 수있다.이처럼 유리에 대한 선호의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투명한 것을 좇고 또 그러한 것을 즐겨찾는 현대인의 성향은 먼저 내외공간의 연결에 의한 개방성을 추구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것은 또 한편 빛에 대한 예민한 반응의 한 현상이다.
높은 수직의 아치형 문이나 창문을 선호하는 것은 실내에까지 태양빛이 가득차는 공간을찾아나서는 서양의 로코코식 양식이 좋은 예이다.요즘 우리나라 도시건물의 한 부분에 그와 같은 높은 아치형 문이나 창이 마치 유행처럼 전파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현대인들의 개방적인 공간성의 선호못지 않게 빛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얼마나 큰가 하는점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투명성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경향못지 않게 우리는 또 하나의 유리의 세계를 많이 좇고 있다.그점은 다름 아닌 투명성에 반대되는 불투명성에 있다.즉 거울의 세계이다.거울속을 들여다 보듯이 사실을 환히 들여다 보면 진실을 숨김없이 비쳐볼 수 있는 그런 교훈적인 거울과는 거리가 있는 또하나 거울의 중요한 특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그것은 다름아닌 실제 세계가 아닌 환영의 세계이다.
오늘날은 실제와 환영의 세계가 사실상 교차되고 서로 모순되는 시대이다.요즘 조형예술가들의 작품에 거울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일찍이 19세기 중엽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장인 「수정궁」의 위용에서 유리와 철에 의한 경이로운 새 건축미학을 경험한바 있다.20세기초 건축가들의 소위 「글라스 커튼」이라는 유리벽의 도입에서는 과거의 기둥과 벽의 기능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사실을 상기할 수있다.이처럼 유리에 대한 선호의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투명한 것을 좇고 또 그러한 것을 즐겨찾는 현대인의 성향은 먼저 내외공간의 연결에 의한 개방성을 추구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것은 또 한편 빛에 대한 예민한 반응의 한 현상이다.
높은 수직의 아치형 문이나 창문을 선호하는 것은 실내에까지 태양빛이 가득차는 공간을찾아나서는 서양의 로코코식 양식이 좋은 예이다.요즘 우리나라 도시건물의 한 부분에 그와 같은 높은 아치형 문이나 창이 마치 유행처럼 전파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현대인들의 개방적인 공간성의 선호못지 않게 빛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얼마나 큰가 하는점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투명성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경향못지 않게 우리는 또 하나의 유리의 세계를 많이 좇고 있다.그점은 다름 아닌 투명성에 반대되는 불투명성에 있다.즉 거울의 세계이다.거울속을 들여다 보듯이 사실을 환히 들여다 보면 진실을 숨김없이 비쳐볼 수 있는 그런 교훈적인 거울과는 거리가 있는 또하나 거울의 중요한 특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그것은 다름아닌 실제 세계가 아닌 환영의 세계이다.
오늘날은 실제와 환영의 세계가 사실상 교차되고 서로 모순되는 시대이다.요즘 조형예술가들의 작품에 거울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1993-12-22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