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존중의 사회/김현철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원칙존중의 사회/김현철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김현철 기자 기자
입력 1993-10-05 00:00
수정 1993-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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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양천구 신정2동 126 신정 재개발 지구에서 생긴 일이다.

현대건설이 재개발 공사를 맡은 이 지역은 주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해졌다.현대측이 시위 주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약 한달 동안 계속됐던 시위 사유는 기존 아파트 바로 앞에 들어설 신축 아파트가 20층이라 일조권이 침해된다는 것이었다.새로 짓는 아파트는 기존 12층 짜리 아파트와 38.4m의 간격을 두고 있다.

현대측은 건축 허가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였으나 주민들이 공사현장에서 농성을 벌이자 법적으로 대응했다.합법적 공사를 집단의 힘으로 막아 공사가 지연된데 따른 손해배상 8천5백만원을 요구한 것이다.그러자 주민들의 시위가 사라졌다.

재미 있는 것은 현대측의 이같은 「정면돌파」가 약국파업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조치 이후 단행됐다는 점이다.공기지연을 무릅쓴 지리한 소모전 대신 정부의 「원칙」을 본떠 해결책을 마련한 것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안되는 것도 떼만 쓰면 되고,정당한 것도 집단으로 밀어 붙이면 안 되게 하던 지난 날의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때 대기업은 민원성 시위의 「봉」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정부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마련하고 이를 엄격히 집행하는 이상 당당히 룰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일조권이 침해되는 건축허가라면 당연히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그러나 그 1차적 대상은 허가를 내 준 구청이어야 하며,시공회사는 그 다음일 것이다.민사소송 등 합법적인 절차도 보장돼 있다.

주민들은 시위 대신 뒤늦게 관할 양천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애초 건축 설계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물리적 힘에 의한 민원해결이라는 관행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1993-10-0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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