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급급한 3류 무대”/러 성폐테르부르크 심포니 내한 공연

“돈벌이 급급한 3류 무대”/러 성폐테르부르크 심포니 내한 공연

서동철 기자 기자
입력 1993-09-11 00:00
수정 1993-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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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립한 러시아 음악계·장사속 국내 초청측 결탁/교회단체 겨냥,찬송가 주제 교향곡 의뢰/“해외악단초청 이래도 되나” 우려의 소리

「음악수준은 뛰어나지만 가난한 러시아 음악계와 그 반대 상황에 있는 한국의 상호보완」.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중량감있는 교향악단들이 잇따라 내한해 충격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던 당시에 내려진 평가이다.그 교향악단들은 물론 지금도 뻔질나게 한국을 드나든다.그러나 이제 의미는 달라졌다.초청자측은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연주회의 내용을 관계치 않는다.마찬가지로 러시아인들은 돈만 되면 어떤 무리한 요구도 다 들어준다.

오는 15일부터 25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5개 도시에서 8차례 연주회를 가질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 심포니도 그같은 의미의 퇴색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지휘자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가 이끄는 성 페테르부르크 심포니」라는 외형은 지난 91년 첫 내한 때와 같다.당시에는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짜 러시아음악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성 페테르부르크 심포니는 이번 공연에서 러시아의 현역작곡가 안드레이 페트로프의 「찬송교향곡」 1·2번을 세계 초연한다.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해외유명교향악단을 초청하는데 현대작곡가의 교향곡을 초연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에 비견된다.한마디로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다.그러나 페트로프의 교향곡은 경우가 다르다.오히려 표를 팔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주최측은 이번 연주회를 위해 교향곡을 써본적이 없는 페트로프에게 지난해 2곡의 교향곡을 위촉했다.이와함께 우리나라 교회에서 가장 많이 불리어지는 찬송가를 교향곡의 주제로 써달라고 주문했다.「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주 날개밑」「하늘 가는 밝은 길」「내 진정 사모하는」「저 높은 곳을 향하여」 등에서 헨델의 「할렐루야」까지의 악보가 그에게 전해졌다.페트로프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러시아의 작곡가이기에 이같은 조건을 수락했고 주최측도 작곡료가 싸기에 투자가 가능했던 셈이다.

이번 공연이 국내 기독교의 교세를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는 것은연주회로는 유례가 드물게 10인 이상의 단체에게 입장권 가격의 20%를 할인해 주는데서도 잘 드러난다.그 결과 현재 예매창구에는 교회의 단체구입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연자도 마찬가지이다.교향악단 측에서 추천한 러시아 출신의 17세 소녀 피아니스트 폴리나 오세틴스카야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피아니스트 손은수와 유혜영,그리고 교향곡의 독창부분에 소프라노 넬리 리가 나선다.주최측은 과거 이 교향악단이 러시아곡 일색에서 베토벤과 그리그등이 포함되었다며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베토벤과 그리그는 음악회의 의미를 더하기 위한 「사전조율」의 결과라기 보다는 연주회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겠다는 독주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경력관리를 위한 연주회이지 정당한 개런티를 받고 청중을 위해 하는 연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궁핍한 경제사정이 낳은 해프닝이다.이번 연주회뿐 아니다.지난달에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을 역시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가 지휘하는 성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이 한복까지 차려입힌 성 페테르부르크 방송합창단과 함께 녹화한 레이저디스크가 발매됐다.또 국내음악인들은 유수한 러시아 교향악단과 언제든지 협연할수 있다.심지어는 대중가수도 마찬가지다.실력과 관계없이 돈만 있으면 된다.

뜻있는 음악인들은 이같은 행태가 러시아 음악인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우리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해외음악교류에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서동철기자>
1993-09-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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