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0조원 무자료거래 “종지부”/실명제 충격에 거래 거의 끊겨

연 20조원 무자료거래 “종지부”/실명제 충격에 거래 거의 끊겨

곽태헌 기자 기자
입력 1993-08-26 00:00
수정 199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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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상 세원노출 꺼려 영업 삼가/재래시장 점포마다 “매출격감” 호소/“부가세율 낮춰야” 상인들 한목소리

금융실명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중의 하나가 청량리시장·문래동시장·영등포조광시장·동대문시장·남대문시장·용산전자상가·청계천세운상가 등이다.무자료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무자료거래란 세금계산서(자료)가 없거나 가짜세금계산서를 만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말한다.매출 및 매입에 따른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을 내지 않는다.이같은 거래는 규모가 큰 도매업자와 영세업자 가릴것없이 시장에서 이뤄져온 거래관행이다.지하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무자료거래품목은 술·청량음료·커피·차 등 음료수와 라면·설탕·치약·화장지·비누·세제류·통조림·조미료 등 생필품,건자재·철강 등 거의 전품목이다.

무자료거래가 성행하는 것은 제조업체의 밀어내기식 판매관행과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상호간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의 경우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흔히 물건을 쏟아붓는 수법을 쓴다.대리점의 경우 제조업체에 잘못 보이거나 판매실적이 나쁘면 대리점권리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에 관계없이 주는대로 물건을 인수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인수한 대리점은 자금문제 때문에 팔리지 않는 비인기상품과 인수한 물량중 소화능력을 벗어난 부분을 헐값에 다음 단계인 1차도매점(1차도매점이 직접 제조업체로부터 무자료로 받는 경우도 많다)에 싼 가격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팔리지 않는 물건을 안고 있다가 부도가 나는 것보다는 자금회전을 위해 빨리 처분하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이 단계부터 본격적으로 무자료가 생긴다.

실명제로 이러한 무자료거래와 무자료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생필품의 무자료거래가 비교적 많은 제기시장에서 음료수를 취급하는 김호진씨(44)는 『2차도매상들이 물건을 사면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자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자료를 발생시키기 힘들다』며 『실명제후 거래를 하면 금융기관을 거쳐야 하므로 자금추적을 두려워한 2차도매상과 소매상들이 매입을 줄이기 때문에 요즘 매상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통조림과 음료수를 매매하는 박종율씨(53)도 『불경기에다 실명제까지 겹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매상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청량리시장에서 라면과 잡화를 취급하는 최모씨(49)는 『매월 종업원 월급과 창고 사용료 등으로 1백60만원을 지출하고 있어 세부담을 줄이려고 부가가치세를 신고할 때 매출액을 실제보다 크게 줄여 신고할 수밖에 없다』며 『매출을 줄여 신고하는 것을 막으려면 세율을 현실에 맞게 낮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실명제로 가계수표가 추적을 받게 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청량리시장에서 음료수와 주류를 취급하는 한 상회의 주인은 『제조업체가 인기가 없는 제품은 출고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 팔리는 물량이상으로 물건을 내놓아 덤핑과 무자료가 이뤄져 유통시장이 엉망』이라며 『물건을 받을 때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고 현금으로 거래해 부가세를 적게 내는 과세특례자로 되어 있다』고실토했다.

그러나 실명제로 무자료거래와 무자료시장은 발붙이기가 어렵게 됐다.그러나 연간 20조원으로 추정되는 무자료거래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정부도 무자료거래의 완전추방을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현실에 맞게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비현실적으로 너무 높은 세율은 오히려 편법과 불법을 키우기 때문이다.납세자가 납득할 만한 세율을 정한 다음 그뒤에도 탈세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거보다도 더 무거운 세금추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곽태헌기자>
1993-08-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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