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물어도 불어로 대답/“불인 모국어 자긍심은 과장”

영어로 물어도 불어로 대답/“불인 모국어 자긍심은 과장”

박강문 기자 기자
입력 1993-06-26 00:00
수정 1993-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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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알면 자연스레 말하는게 실상/“언어문제는 한­불 투자·교류 장벽 못돼”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도 모른체 한다』든가 『파리에 가서 영어로 길을 물었더니 불어로 대답하더라』는 말이 국내에 꽤 널리 퍼져 있다.그리고 으레 이런 말들에 이어지는 평가는 프랑스인의 자국어에 대한 긍지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말들과 평가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현지 생활체험에서 보면 매우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다.위의 말들은 외국어 숭배병(특히 영어에 대한)에 걸린 일부 동포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누군가가 국내에 부풀려 유포했을 것이다.

옛날에는 영어를 알면서도 모른 체 했는지 몰라도 요즘 그런 프랑스 사람은 없다.오히려 영어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즐겨 말한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파리에서 프랑스 사람에게 동양 사람이 서투른 불어로 물으면 도리어 『영어 할 줄 아느냐』면서 영어로 대답해주는 경우를 자주 본다.

혹시 제2차 세계대전말에 프랑스를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시킨 미군들이 진주했을때 영어 좀 안다고 껍적대는 작자들을 눈꼴시게 여긴 일부 교양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있다.

영어질문에 불어 대답이 나오더라는 것은 사실일 수 있으나 그것을 불어에 대한 긍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그 프랑스사람의 영어실력이 좋았다면 틀림없이 영어로 대답했을 것이다.영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외국어다.학생 시절에 배우기는 하지만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영어로 길을 물어올 때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프랑스에 호감을 갖고 있고 비교적 프랑스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그런데도 흔히 우리 한국인은 서양인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고 영어를 하리라고 잘못 믿고 있다.또 그 반대로 영어가 프랑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도 있다.정반대의 이 극단적인 두 고정관념은 모두 틀린 것이다.

얼마전 한·불 상공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두 나라 사이의 교역및 투자가 활발하지 못한 원인으로 한국측 인사가 언어문제를 들자 프랑스측 인사는 『영어로 하면 되지 않느냐.어려울 것 없다』고 말했다.문제라면 상거래 관습의 차이가 더 문제이지 언어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프랑스 진출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영어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프랑스인의 자국어에 대한 대단한 긍지 어쩌구 하는 이야기도 출입금지의 잔디밭에 떨어진 소년의 모자를 영국 신사가 지팡이로 꺼내주었다는 이야기나 네덜란드 소년이 터지는 둑을 팔뚝으로 막아 큰 재난을 피하게 했다는 이야기처럼 과장된 것일 뿐이다.외국어에 대한 관용은 오히려 자국어에 대한 긍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파리=박강문특파원>
1993-06-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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