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손/사사로운 청탁땐 자식들도 엄벌(역사속의 청백리)

정갑손/사사로운 청탁땐 자식들도 엄벌(역사속의 청백리)

우득정 기자 기자
입력 1993-04-01 00:00
수정 1993-04-0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조선초기의 명신 정갑손(?∼1451)은 동생 정창손과 한 시대를 봉직하면서 함께 청백리로 선정됐다.

그는 대사헌으로서 당시 혼탁했던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특히 도의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성품이 강직했기 때문에 권세가나 자녀들조차도 사사로운 일로는 청탁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가 대사헌으로 재직할 당시 이조에서 인물을 잘못 천거하여 자격미달자에게 벼슬이 주어졌다.정갑손은 곧 사정에 나서 인물을 잘못 천거한 판서와 잘못 기용한 이조판서를 함께 임금인 세종앞으로 불러들였다.정갑손은 그들이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판서임에도 「사람을 잘못 천거하고 잘못 기용해 국사를 그르쳤으니 임금이 직접 국문할 것」을 건의했다.이에 세종이 중재에 나서 간신히 화해시켰다.두 판서가 당혹스러워 진땀을 줄줄 흘리자 정갑손은 「내 임무에 충실했을 뿐 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면서 태연스럽게 「두 분께서 매우 더우신 모양이니 부채질을 해 드려라」고 시켰다고 한다.

또 그가 함길도관찰사시절 어명을 받아 한양으로 향하고 있었다.마침 지나가는 길가에 함길도에서 시행하는 향시 합격자의 병이 붙어 있었는데 그 명단에 자신의 아들이 포함돼 있었다.이에 정갑손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시험관에게 「감히 나에게 아첨을 하려 드느냐.내 아들은 아직 학업에 정진하려면 멀었거늘 어찌 요행으로 합격을 시켜 임금을 속이려 하느냐」고 꾸짖으면서 합격자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삭제함은 물론 시험관리 책임을 물어 시험관을 파직시켰다.

이처럼 추상같은 성품의 소유자였음에도 그는 국가의 기강을 해치지 않는 사사로운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용서할 줄 아는 아량을 갖기도 했다.

당시에는 금주령이 내려 모든 관리들이 술을 마실 수 없었으나 사간원관리들만은 예외로 허용이 됐다.사간원과 사헌부의 합동회의가 열릴 때면 서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앉았는데 음주가 허용된 사간원의 한관리가 술을 못마시게 된 사헌부관리들에게 약을 올리기 위해 칸막이 사이로 술이 가득찬 잔을 들이밀다가 그만 잔이 정갑손앞으로 떨어졌다.술 담긴 잔인줄 알면서도 정갑손은 거위같이 생긴 이상한 물건이 들어왔다며 들어왔던 곳으로 도로 던져버려라고 말해 모두 그의 아량에 탄복했다고 한다.<우득정기자>
1993-04-01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일상 및 업무 내 AI 서비스 활용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상 및 업무 내 AI 서비스 활용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과 대부분을 AI와 병행한다.
단순 참고용으로 간헐적 활용한다.
거의 활용하지 않거나 직접 수행하는 방식이 우선이다.
지난 Poll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