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단편 「그의 침묵」(이달의 소설)

최윤 단편 「그의 침묵」(이달의 소설)

이동하 기자 기자
입력 1993-02-25 00:00
수정 199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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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물속에 갇힌 강요된 침묵

지난해에 「회색눈사람」이라는 수작을 발표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모았던 최윤이 새해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주목에 값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문예중앙』봄호에 실린 단편 「그의 침묵」이 그것이다.

「그의 침묵」의 화자는 조각가이다.그는 가난한 섬마을의 무지한 토공의 아들로 태어나,지금 생각해도 되풀이하기 싫은 어려운 생존의 계단들을 밟아온 끝에 소설속의 현재 시점에서는 그런 대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그의 아버지는 박삼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장이로서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지독하게 과묵한 사람이었으며 역시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화자가 태어난 이후 단 한번도 육지로 나들이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화자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모두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들어왔고 또 그렇게 믿어왔다.그런데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의 어느날 화자는 여행중 들린 소도시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구한,1949년에 개최 되었던 진덕우라는 좌익조각가의 전시회를 알리는 팸플릿에서,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전시회의 주인공으로서 그 팸플릿에다 조각품들의 사진과 함께 「형태와 세계의 변증법적 대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있는 진덕우라는 사람의 사진이야말로 화자가 갖고 있는 아버지 박삼돌의 젊은 날을 증명하는 단 한 장의 사진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화자는 이 엄청난 발견 앞에 경악하면서,비로소 아버지의 임종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아버지는 운명하는 순간 자네 이 말뜻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야릇한 바람 소리같은 이상한 소리를 힘들게 흘려내었는데,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역사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게쉬히트였던 것이다.

대략 이상과 같은 줄거리를 가진 「그의 침묵」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한 총명하고 진지한 예술가로 하여금 그의 생애 가운데 후반부를 가장 참담한 침묵의 공간으로 채우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한 저 역사라는 데몬의 괴력을 상기하고 전하지 않을 수 없다.진덕우의 삶에 엄청난 힘으로 개입하여 원래 거기에 내장되어 있던 모든 가능성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역사,구체적으로 말해 한국 현대사라는 것의 마성으로부터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가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인간은 그를 둘러싼 역사의 그물에 의하여 철저히 일방적으로 규제당하게 마련이라는 투의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잘못이리라.그러나 이러한 잘못에 빠져들 가능성을 우려한 나머지 진덕우가 임종의 순간 힘들게 흘려낸 게쉬히트라는 말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 될터이다.우리가 「그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가장 지혜롭게 읽는 길은 패배주의적 발상에 빠지지 않는 한계 내에서 역사라는 데몬의 괴력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세를 이 소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를 함부로 무시하는 경박한 태도가 유행하고 있는 최근의 세태를 상기할 경우,더 큰 절실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느낄수 있다.

1993-02-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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