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찌든 가족의 황폐화 묘사

입시에 찌든 가족의 황폐화 묘사

김수정 기자 기자
입력 1992-10-22 00:00
수정 1992-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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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극 「2억짜리 이야기」 공연을 보고/정상생활 벗어난 병리현상 생생/10여분 공연에 웃음·한탄·감탄사/극본 정신과의사·출연 현역교수·관객 고3학부모 “이색무대”

『아니 여보 뭘 하고 있는거예요.TV과의 녹화할 시간이잖아요』

어휴 벌써 몇년째 종노릇이야.자식을 낳았다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나.이건 사는게 아니야』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한국사회학회 가족.문화연구회(회장 이동원 이대교수)가 주최한 「대학입시와 가족」심포지엄 강단이 「나(수험생)는 내가 아니다」「어머니는 고달프다」「아버지는 주변인인가」란 주제발표에 이어 이색적인 무대로 꾸며졌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입시경쟁」으로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피해자 공동체」로 전락해 버린 가족의 병리현상을 생생하게 짚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꾸며진 「2억짜리 이야기」는 현직 정신과 의사인 김정일씨(서울시립정신병원)가 극본을 쓰고 이 학회의 회원교수·강사들이 직접 역을 맡은 사회극.

자리를 가득 메운 고3수험생의 학무모들은 비록 10여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연극이었지만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어설픈 연기가 더욱 실감이 났는지 장면마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함께 공감을 표하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떤 학부모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되새겨졌는지 긴 한숨만 토해내기도 했다.

수험생 딸(이미란 이대 대학원생반)이 독서실에서 돌아오기전엔 간식도 먹지 못하고 아내로부터 부부관계조차 입시전까지 거절당하고 있는 고독한 아버지(안계춘 연대교수반)와,딸에게 고액과외를 시켜야겠다며 과외비를 더 달라는 어머니(박춘호 경원대 강사반)의 실랑이로 연극은 시작된다.

『미선이가 지방대학에 가는 것을 원치않으시면 백만 더 쓰세요』

『이제까지 쓸어댄 돈이 얼만데 자그마치 2억이야.알았어 알았다구』

학원에서 늦게 돌아와 버릇없이 소파에 드러눕는 미선.엄마의 간섭에 짜증을 내며 아버지에게 「꼭 대학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욕구의 분신」을 상징하는 과거의 여인이자 환상의 여인(강득희 이대강사반)이 『「네 인생은 네거야」라고 말해.대학에 안가도 된다고 말이야.대학에 안가도 된다고 말이야 어서』하고 아버지에 재촉한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끝내 딸에게 『그래도 일단은 들어가고 봐야하지 않겠니』라고 말한다.

환상의 여인이 질타한다.『병신 그래서 나하고 못살지』

『너도 그렇게 잘났으면 자식낳고 키워봐』과중한 경제적부담을 지고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대버린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막을 대신하는 어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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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을 쓴 김정일씨는 『대학입시로 인한 가족의 황폐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볼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해결책을 제시할수는 없었지만 일종의 「역할놀이」를 통해 비상식적이 돼가는 우리 가족의 기능상실과 해체현상을 고발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김수정기자>
1992-10-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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