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소군대표 공개
【모스크바 연합】 제2차대전 종전과 함께 평양에 진주한 구소련군이 38선 이북의 일본군으로부터 정식항복을 받을 때 조만식선생이 참석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평양에 진주한 소련 제25군사령부(사령관 치스차코프대장) 직속특별정치선전공작대인 소위 제7부의 부책임자였던 레오니드 바신(77·당시 소좌)이 1일 연합통신에 제공한 항복식 장면을 촬영한 2장의 사진에서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45년 8월18일 거행된 항복식에 조만식선생과 치스차코프대장 및 일본군사령관 쇼지 후루카와중장 등 단 3명만 참석했는데 소련과 북한은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을 극력 감추어왔다.
바신에 따르면 특히 항복식이 거행된 장소가 조만식선생이 8월15일 석방된 직후 일제로부터 행정권을 인수받고 평양도청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이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연합】 제2차대전 종전과 함께 평양에 진주한 구소련군이 38선 이북의 일본군으로부터 정식항복을 받을 때 조만식선생이 참석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평양에 진주한 소련 제25군사령부(사령관 치스차코프대장) 직속특별정치선전공작대인 소위 제7부의 부책임자였던 레오니드 바신(77·당시 소좌)이 1일 연합통신에 제공한 항복식 장면을 촬영한 2장의 사진에서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45년 8월18일 거행된 항복식에 조만식선생과 치스차코프대장 및 일본군사령관 쇼지 후루카와중장 등 단 3명만 참석했는데 소련과 북한은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을 극력 감추어왔다.
바신에 따르면 특히 항복식이 거행된 장소가 조만식선생이 8월15일 석방된 직후 일제로부터 행정권을 인수받고 평양도청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이었다고 말했다.
1992-10-02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