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봉수화백 26일부터 대규모 회고전

고 박봉수화백 26일부터 대규모 회고전

이헌숙 기자 기자
입력 1992-06-22 00:00
수정 1992-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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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서 마련/“시대앞선 예술감각” 새롭게 평가/시기별 화풍대표작 50여점 전시

한국화가 지홍 박봉수화백.1년전 75세의 나이로 숨진 이 작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화풍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이 작가에 대한 평가와 재조명작업이 일부 미술평론가 윤범모,김진송씨등 미술계 인사들에 의해 새롭게 이뤄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는 찬사속에 대대적인 회고전이 준비되고 있다.

오는 26일부터 7월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마련되는 그의 1주기 회고전에는 유족이 소장해온 1천여점의 유작가운데 시대별 화풍을 대표하는 대작 50여점이 전시된다.

평론과 도판 2백50여점이 컬러화보로 담긴 두터운 화집도 발간되며,전시기간중에는 유족과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감정위원회가 시중에 크게 나도는 박화백의 가짜그림을 가리기 위해 작품감정을 해주고 작품보증서를 무료로 내줄 예정이기도 하다.

이같은 감정행사는 유례없는 일로 최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멧돼지 잉어 등을 그린 박화백의 초기사실작품의 가짜가 수백점 나돌고 있는데 따라 취해지는 것이다.

박화백의 가족을 통해 최근 1천여점의 유작을 접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그의 시대를 앞서간 예술감각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그리고 윤씨는 이번 재조명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사후에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박화백은 1916년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9세무렵부터 뛰어난 그림을 그려 신동이란 얘기를 들었다.15세에 일본인 교장선생의 추천으로 일본유학의 길에 오르고,17세에 일본 수채화전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공식적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1934년 조선전람회에 입선하고 그 이듬해 중국의 북경미술학원에서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7년 귀국,금강산에 입산해 3년간 사찰을 돌며 불상과 탱화제작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토속적이고 원시주술적인 내용의 작품과 실험성 있는 콜라주기법의 표현,문자와 인체를 소재로한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이는 고 이응로화백의 문자도보다도 앞선 것이어서 당시엔 그를 보고 『약간 돌았다』는 말까지 했다.

1959년 미국의 화랑초대로 발예모초대전,피렌체국제전 등에 출품하며 국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국내 화단에서는 방랑벽을 지닌 국외자 신세를 면치못했다.

1970년이후 일본 아프리카 유럽등 세계 각국에서 스케치여행을 하며 프랑스미술협회(ADAGP)의 정회원이 됐다.국내작가로는 이응로 이항성화백과 박화백 단3명만이 정회원이었고 그중에서도 국내거주자로는 유일했다.

파리예술원회원·파리조형예술작가보호협회회장 등의 직함이 시사하듯 그는 외국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고 생활도 외국에서 팔리는 그림으로 꾸려갔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 평론가는 『지홍은 전형적인 수묵산수화나 채색화훼도의 세계로부터 분방한 자세의 실험정신에 이르기까지 늘 출렁거리는 일생을 살다갔다』면서 『형식이나 재료의 다양함뿐 아니라 즐겨 다루는 내용이나 주제도 참으로 변화무쌍하다』고 평했다.

구도의 행각승처럼 노년에도 청년미술학도같은 열정으로 실험정신을 구가했던 지홍은 지난해 더운 여름날 병상에서 제작하던 대작 「태풍」을 절필작으로 남기고 예술인생을 마감했다.<이헌숙기자>
1992-06-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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