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웃음/김준철 제주대총장(굄돌)

넉넉한 웃음/김준철 제주대총장(굄돌)

김준철 기자 기자
입력 1992-05-23 00:00
수정 199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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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의 석학 버트란드 러셀은 「행복의 획득」이라는 글에서 행복한 사람의 모습 하나를 소개해 주고 있다.그 주인공으로 돈이나 지위나 명예로 보아서는 하잘것 없는 정원사 한 사람을 예로 든다.러셀 자신은 그 정원의 주인이고 그 정원사는 자기의 삯일꾼이었다.그런데도 그 정원사는 언제나 즐거운 모습이라는 것이다.나이도 70 고령에 이르렀고 가난했지만 그는 하루종일 일하고 16마일의 언덕길을 자전거로 왕복하면서 그토록 즐거운 표정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행정을 맡고 있는 필자가 러셀의 행복론을 글머리에 싣고 이야기를 출발시키고 있는 것은 내가 캠퍼스를 거닐 때 그 정원사 같이 소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자주 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 대학의 정원에는 요즈음 같은 신록의 계절이 되면 파아란 잔디를 손질하는 미화부 아주머니들의 유쾌한 작업모습이 그토록 즐거워 보인다.수건을 쓴 한 무더기의 아낙네들이 평화로운 잔디위에서 웃음소리에 섞인 이야기꽃을 피우며 잡초를 뽑아나가는 것이 그토록 마음이 넉넉해 보인다.

총장인 나와 그 일하는 주부들과의 외형적인 생활상의 비중을 따져보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는 경제적으로나 지위로나 그들보다 좋은 처지에 있다고 하겠다.그러나 만약 우리가 행복의 가치를 마음의 평강면에서만 찾는다면 그 아낙네들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물론 그분들도 옹색한 살림 꾸려가기에 고달픔이야 많겠지만 나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거기에 밤낮으로 고뇌하는 이 총장의 번뇌에 비하면 한결 가볍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하나의 「행복론」이나 한 정원사의 미담을 펼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주부들의 그 화락한 모습에서 삶의 한 행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잔디를 손질하는 사람이나 한 대학을 운영해 가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알맞은 몫을 담당하고 있다면 그 소임 수행에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그 아낙네들의 넉넉한 웃음으로 감당해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1992-05-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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